2009년 5월12일 미국 백악관에서는 대통령이 주최하여 ‘시의 힘’을 찬양하는 ‘시 낭송 파티’가 열렸다. 오바마는 개막 연설에서 ‘우리는 말의 힘(power of words)을 찬양하기 위해 모였다. 말은 우리가 아름다움을 알고 고통을 이해하도록 돕는다’고 했다. 평소 그의 ‘시 사랑’에 비추어 보면 ‘말’이란 단어를 ‘시’로 바꾸어도 무방하며 오히려 그 편이 더 자연스럽다. 애플사를 창립한 스티브 잡스의 영감은 영국 낭만파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에서 나왔고, 빌 게이츠의 독창적인 사고와 아이디어도 시에서 얻은 이미지훈련 덕택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국내 CEO들 사이에서도 ‘무언가 특별히 다른 1%’를 위해 시를 읽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몇 해 전에는 국회사무처에서 「정치, 시에서 길을 찾다」란 책을 발간하며 정치인들의 애송시를 소개한 적도 있다.
이쯤 되면 시집은 새로운 개념의 자기계발서이며, 실용서적이라 해도 손색이 없겠다. 하지만 시집의 수요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으며, 그나마 팔리는 몇몇 시인의 시집 말고는 대개가 별 볼일 없이 그냥 내는 기념품 증정용 시집들이다. 여전히 시를 읽어도 세월은 가고 시를 읽지 않아도 세월은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시에 길이 있다고 믿는 가상한 독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길에 시가 있기 때문에 그냥 시를 쓴다. 수요를 위해 공급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들 정서의 기울기와 비대칭으로 불행의 작두날 위를 걸어가는 시인들의 모습이나 실컷 보면서 조롱하시라고 시를 쓴다.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 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반칠환 시인의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이란 시다. 이런 상황은 모두 우리네 일상의 단란한 배경들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 대수로울 것 없고 무덤덤한 풍경의 조합을 시인과 공유하면서도 시는커녕 시심이 꿈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 풍경 앞에 잠시 멈칫하긴 하였으되 그 힘으로 다시 걷는다 하기엔 아무래도 거짓 같았다. 모든 길은 세상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훌륭한 통로라 생각하며, 그 길을 가다 잠시만 멈춰 서면 생명의 경이와 삶의 치열함이 환히 보인다는 시인의 시선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일상의 삶이 곧 하느님의 현존이라는 것과 그 삶에서 자신을 곧추세워야 한다는 것을.
“안개꽃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안개꽃 뒤에 뒷짐을 지고 선 미루나무도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 들판에 사는 풀이며 메뚜기며 장수하늘소도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 말을 옮겼다 반짝이는 창유리에게, 창유리에 뺨을 부비는 햇빛에게, 햇빛속의 따뜻한 손에게도 말을 옮겼다. (중략) 새들은 하늘로 솟아올라 그 하늘에게, 물고기들은 물밑으로 가라앉아 그 바닥에 엎드려 잠자는 모래에게, 아침노을은 저녁노을에게, 바다는 강에게 산은 골짜기에게, 귀신들은 돌멩이에게 그 말을 새겼다. (후략)” 이상은 박제천 시인의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의 일부이다. 우리는 누구나 혼자라는 생각에 쓸쓸하고 외롭다고들 하지만 우리 주위엔 수많은 존재와 생명들이 있고 무엇보다 주님이 함께 계신다. 그 사실을 잊고서 다른 존재들과 단절되어 있다고 여길 때 외로움을 탄다. 그러나 주님과 뭇 생명들은 늘 그 자리에, 그리고 내 곁에 있다. 심지어는 무생물이나 관념적인 것들까지도. 내가 눈을 감고 귀를 막아 그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 집적대는 것을 눈치 못 채고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쉽게 남에게 마음을 열 수 없다 보니, 내 곁에 있는 살가운 존재들에게조차 눈길을 주지 못했을 뿐이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그들이 다루는 연장과 주변의 돌과 흙 등의 자연물이나 음식, 그리고 옷과 이불에게 다정한 친구에게 하듯 늘 말을 건다. 밥을 하기 위해 옥수수 단지를 열며 말한다. “오늘도 우리는 너희들이 필요하단다. 내게 필요한 만큼 가져가도록 허락해줄 거지? 고마워. 다시 올 때까지 안녕.” 또 화덕에 불을 피우면서 말한다. “언제나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고 음식을 익힐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마워. 우리는 너의 불꽃을 보면서 꿈을 꾼단다.” 그동안 신던 모카신이 헤져 더 신을 수 없게 되었을 때도 말한다. “많은 시간 내 발을 지켜줘서 고마웠어. 네가 없었으면 내가 많이 힘들고 불편했을 거야.” 범사가 그런 식이다. 아침에 해에게 인사하고, 저녁에 달에게 말을 건네고, 밤에는 별과 대화하는 것은 그들의 일상이다. 그렇게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그들은 다정하고 정겹게 인사하고 시적으로 말을 건넨다. 이런 인사와 말 걸기는 우리 가톨릭 신앙인에게도 꼭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주님께 거침없이 스며들어 그 소통의 통로가 한없이 넓어질 수 있겠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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