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의사와 약사와 병원을 불신하고 있다. 의료보험공단의 적자는 엄청난 액수로 증가하고 있으나 정부의 재정지원도 한계에 부딪히고 있고, 국민의 의료보험비 상승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다. 선진국에서 큰 문제없이 시행되고 있는 의약분업도 우리 나라에서는 많은 난관에 부딪혀 이른바 「의료계의 대란」을 우리는 겪었다. 전문의들까지도 이제는 공공연히 현대의학의 위기를 부르짖는다.
그렇다면 현대의학의 위기는 어떻게 초래되었으며, 또 어떻게 극복될 수 잇는가를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의학의 위기는 의료법이나 보험규정과 같은 제도를 바꾼다거나 또는 의료보험비와 의료수가를 올려주는 것으로 극복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의학(의술)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의사, 간호사, 병원 운영자, 보험회사 직원, 보건담당 관리, 의료사고 소송자(변호사), 제약회사와 의료기기 회사의 중역과 영업사원, 약의 광고주와 홍보 담당자,, 의료기술자, 언론매체 종사자들의 복합적인 이기주의가 환자의 약점을 이용하여 치부하는 데서 발생했으며, 여기에 환자의 무지와 조급함과 몰염치가 가세하면서 더욱 더 의술의 위기를 촉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가 세균이 전염병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항균제가 발명되고, 에테르를 마취제로 사용하게 되면서 외과수술이 급속도로 발전되고, X-ray 발견과 각종 생화학적 검사법의 개발과 항생제 등의 사용은 의학을 전문적인 자연과학화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 결과 의술은 전문적인 과학자인 의사만의 독점물처럼 되어버렸고, 의사들은 많은 부(富)와 사회적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이제 의사는 근세 이전의 성직자들 못지 않게 인간을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을 제시해줄 수 있는 사람들로까지 떠오르게 되었다.
현대의학은 급기야 모든 질병을 유전적 소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유전자결정론을 내세우면서 인간의 유전자를 완전히 해독하고 유전자를 조작·변형하고 생명을 복제할 수 있는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기능주의적으로 발전하면 할수록 더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었으며, 이제는 의학자들 내부에서조차 의학의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첨단 의료기구에 둘러싸인 의사들은 환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의사와 환자의 대화는 단절되었고, 의사와 환자간의 신뢰는 무너졌다. 의학에서 가장 중시되어야 할 보건학 교육, 조기진단과 조기치료는 실제로는 거의 무시되었고, 첨단의학의 혜택은 부유층만 누릴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의료수가는 점점 더 높아지고, 의과학에 엄청난 규모의 연구비가 투자되고 있으나 속임수와 날조가 횡행할 뿐 연구결과는 기대 밖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돈에 눈먼 많은 비양심적인 의사들의 과잉검사 및 과잉진료가 만연되고 있고, 병원은 환자를 격리시킴으로써 가정파괴까지 자행하고 있다. 현명한 사람은 누구나 병의 예방이 치료보다 더 좋고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의학적 노력에서 제일 중요한 부문은 예방의학이다. 따라서 예방의학 교육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의사는 환자의 병이 재발하지 않도록 교육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병의 예방을 위한 공중의 교육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의사는 고도의 전문적인 기술자이며, 병원 운영에서도 우리는 재정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만일 의료계 종사자들이 단순히 자기를 기술자나 상인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절대로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교육과정에서 인간존중과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교육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전문기술자인 의사와 비전문가인 환자와의 대화는 거의 단절되고 있고, 많은 의사들은 자기 스스로 수의사처럼 처신하는데, 이것은 어떤 방법이로든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진단에서 환자의 병력(病歷)과 생활사는 기계검사 소견 못지 않게 소중한 것이며, 의사는 환자의 병의 원인과 환자의 인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의사가 환자의 인격을 무시하고 환자의 대화를 기피하면, 의사들은 환자로부터 불신을 받는다. 불신을 받는 의시는 환자의 병을 치료하기 어렵다. 의사가 환자를 인격으로 대우하지 않으면 의사 자신도 자기 자신의 인격성숙을 위한 노력에 태만하고, 종래에는 의사 자신의 인격까지도 포기하게 되고 비정한 기계적인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의료종사자가 자신의 인격수양과 정서함양에 게을리하거나 돈만 밝히는 배금주의자가 되면, 그 개인의 인격파탄 뿐만 아니라 환자와 환자의 보호자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은 지대하다. 이제 환자 자신도 병의 예방과 재발방지를 위해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물론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