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다가와 상(賞)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천재 소설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쓴 글에, ‘이 세상은 지옥보다도 더 지옥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저승에 가보지 않고도 저 세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의 정신작용은 그만큼 신비롭다. 같은 논법으로 ‘이 세상은 천국보다도 더 천국적’이라는 말도 가능하다.
나는 하루에 한 번은 천국적인 분위기를 맛본다. 조금도 자랑삼아 하는 말은 아니며, 사실이기 때문에 이렇게 쓰는 것뿐이다.
얘기의 발단은 나이를 먹을수록 자꾸만 늘어나려고 하는 체중을 다스리는 문제였다. 체중이 늘면 몸을 움직이는데 힘이 들고, 혈압도 올라가기 쉬우니 문제다. 그런데 이 체중이란 것이 늘기는 쉬워도 줄기는 어렵다. 요것을 어떻게 해야 되나.
묘법(妙法)은 있었다. 하루에 딱 2식(食)만 하는 것이다. 아침은 좀 늦게 ‘아점’으로 먹는다. 낮에는 배가 고파 괴롭더라도 참고 견디다가 약간 이른 시간에 저녁을 잘 먹는 것이다. 이렇게 한지 이제는 꽤 되므로 이 습관이 어느 정도 정착(定着)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오는 이점(利點)도 적지 않은 것이다.
첫째의 이점은 체중이 적합한 선(線)에서 유지된다는 점이다. 69킬로그램는 넘지 않고 지내고 있다. 꿈같은 얘기다. 둘째는 점심 먹는 시간만큼 내 시간이 불어난다는 점이다. 점심 초대를 받으면 이 리듬이 깨지기 때문에 불편하긴 하지만, 이런 경우는 이웃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차원에서 타협하고 상대방 뜻에 응하나 의식적으로 소식을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일일 2식하는 습관에서 오는 최대의 보너스는, 저녁 먹을 때 지상(地上)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천국적(天國的)인 열락(悅樂)을 갖는다는 점이다.
배가 매우 고프므로 문자 그대로 꿀맛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이것만 가지고 저녁 먹는 나의 시간을 천국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과장이다.
저녁상에 내가 좋아하는 술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술은 약간 독하기만 하다면 꼬냑이건 위스키건 빼갈이건 가리지 않는다. 딱 한 두잔. 그런데 역시 제일 내가 좋아하는 술은 우리나라의 문배술이나 안동소주다. 더러 맥주나 막걸리도 좋은 것은 물론이다. 지상의 나그네의 삶을 천국적인 것이 되게 하는 묘약으로서 술 이상이 없다. 나는 이미 천국적인 환경에 들어와 있다.
내 아내는 음식 만드는 일에 취미가 있어 더러 T.V. 앞에서 요리프로그램을 본다. 여기서 본 새로운 요리법으로 조리를 할 때면 식구가 나밖에 없으니 당연히 내가 ‘시식관(試食官)’이 될 수밖에 없다. 애들 5남매가 다 제 각각 가정을 꾸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가 만들어주는 국물요리를 무조건 ‘열구지탕(悅口之蕩)’이라 부른다. 내 입맛에 맞으니 입이 즐거운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또한 볶음에나 지짐에나 안 빠지는 ‘청양고추’도 열구(悅口) 구실을 톡톡히 한다.
그런데 한 가지가 더 있다. 저녁 먹을 때는 으레 오디오나 라디오나 TV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도록 한다. 불후의 명성을 얻고 있는 천재들이 모두 와서 나의 이 좋은 때를 위한 봉사를 해준다. 모짜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의 독일 3대가는 말할 것도 없고, 쇼팽, 슈만, 드보르작 등 대작곡가들에 빌헬름 켐프, 기제킹, 루빈슈타인, 크라이슬러, 오이스트라크, 디스카우, 게르하르트 휘슈, 마리아 칼라스, 카루소, 칠리 등등 이름만 들어도 감격하는 대 연주가들이 순서도 없이 번갈아서 나의 저녁 식탁의 흥을 돋우는 것이다. 역사상 어느 제왕이 지금의 나만큼 호화스런 생활을 누렸겠는가.
지상의 천국을 누리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순서를 지킬 것, 바람(希)의 규모를 줄일 것, 이것이다.
내세는 없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을 더러 본다. 상상력이 그렇게 빈약하단 말인가. 이 세상에 넘쳐흐르는 저 세상의 정보(情報)가 그렇게도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이미 서로 닿아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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