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심기가 한창이다. 그러나 가뭄이 극심하여 걱정이다. 요즘의 자연 현상을 보면 순환이 정지된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인간의 거대한 욕심으로 자연도 그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다. 서울은 마치 거대한 블랙홀이 되어 주변의 모든 것(사람, 돈, 권력…)을 빨아들이고 있다. 서울과 그 주변을 포함한 좁은 수도권 지역에 남한 인구의 절반 가량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바로 그 자체로 엄청난 문제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는 모순 덩어리임을 말해주고 있다.
반대로 지금의 농촌은 대도시의 블랙홀이라는 괴물에 의해 알맹이를 다 빼앗겨 버린 빈 껍데기의 농촌일 뿐이다. 겉으로 보기엔 낭만과 푸근함을 선사하는 농촌이지만 그 뒷면에는 함숨과 허무함만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처럼 우리사회의 도시와 농촌은 그야말로 부조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갈수록 가중되는 도시 집중, 중앙 집중은 그 자체로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텅 빈 농촌 또한 심각한 문제에 휩싸여 가고 있다. 한마디로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농촌인구가 대도시로 유입되면서 상대적으로 늘어만 가는 신자수에 흥분하여 도시교회는 농촌의 고뇌와 아픔을 동정의 눈빛 정도로만 바라보았던 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부조리, 극심한 차별화의 현상은 농촌문제를 무시하고 방치한 데에서부터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농촌 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고 끌어안는다는 것은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우리사회의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가 되리라 확신한다.
우리 교회는 오랫동안 순수한 그리스도 정신을 바탕으로 한 가톨릭 농민회를 중심으로 이 땅의 농민운동의 선두 주자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상 내용을 보면 가톨릭 농민회의 헌신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농민회를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이 아직까지 교회 일각에 자리잡고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교구 내의 농민활동과 농민 사목의 중요한 연결고리와 구심점 역할을 해왔던 가톨릭 농민회 전국 지도 신부의 자리를 우리교회는 없애버렸다. 또한 주교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 된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이 발족되어 움직이고 있지만 교구마다 이 운동에 대한 인식과 후원의 정도가 들쭉날쭉하여 기대와는 달리 별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이제 교회의 상층부와 사제들부터 농촌문제에 대한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제들에게 다양한 사목의 기회가 우선적으로 주어져야 한다. 사실 우리 가톨릭의 정서상 도농간의 교류는 사제들을 통할 때 더욱 다양하고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지금 현재 서울에서 안동교구로 한 명의 사제가 파견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현재 교회의 제도상 교구에 속한 신부는 다른 교구로는 가지 못하고 평생 그 교구 내에서만 사목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도시에서 사목을 했던 신부가 산골에 가서, 어느 섬으로, 어느 농촌으로 가서 다양한 사목 체험을 쌓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사제들간의 교류와 유대감도 별로 없는 상태이다.
현재 그리 크지 않은 한반도의 남쪽에 14개의 교구가 있다. 이는 외적인 면에서 볼 때 한국 교회의 발전이요 업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교구간의 격차를 더욱 벌려 놓아 교회의 균형적인 발전에 장애가 되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을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한다. 사실 신자들에게는 교구라는 것이 별로 큰 의미가 없다. 신자들에게 큰 의미가 없는 교구라면 누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교회의 제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도를 융통성과 효율성을 갖고 활용하는 시각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다시 말해 한국 교회라는 좀 더 큰 틀 안에서 교구를 바라보고 운용해 보자는 것이다.
먼저 주교회의 안에 소위원회를 두어(가령 『교환 사목 위원회』) 교구간 교환 사목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사제 서품을 받고 5~10년 정도는 교구의 벽을 넘어 사목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의무기간이 끝난 후에는 물론 자신의 교구로 돌아가서 사목을 하도록 한다. 이렇게 사제들의 교환 사목이 제도적으로 시행되고 정착된다면 장차 한국교회에 미칠 긍정적인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 되리라 확신한다.
이것이 불가능한 일일까? 아니다. 이러한 교환 사목에 대한 당위성이 너무나 크고 절실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승천대축일을 보내면서 우리 교회가 하늘만 쳐다보지 않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교구의 장벽을 뛰어넘는 성숙한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간절히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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