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마카오 성지순례를 소개하는 블로그에서 한 동영상을 접했다. 애잔한 배경음악 속에 흘러나오는 내용은 김대건·최양업 신부와 함께 신학 공부를 위해 마카오 유학길에 올랐다가 도착한지 얼마 되지않아 위열병으로 숨을 거뒀던 최방제(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학생에 관한 것이었다.
화면에서는 머나먼 이국 땅 마카오에서 짧은 부르심의 삶을 살다 간 최방제 신학생의 자취와 흔적을 찾아보는 영상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카오의 땅 그 어느 곳에 육신을 누이고 있는지 알 수가 없고, 그 자리가 성미카엘 묘지라고만 추정될 뿐 확실한 묘자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 이미지속 발걸음들을 함께 따라가다 보니 묻혀져 있는 그의 기록들이 마음을 아리게 했다.
동영상을 계기로 최방제 신학생의 이야기를 더듬어 보았다. 최경환 성인의 조카이며 최양업 신부와는 사촌지간이었던 그는 병인박해때 양화진에서 순교한 최수 베드로와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최형 베드로 성인의 동생이다.
충청도 홍주에서 최인호 야고보 황 안나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836년 최양업에 이어 두 번째 신학생으로 선발됐던 최방제 신학생. 1836년 12월 2일 김대건·최양업과 함께 신학생 서약을 하고 마카오로 향했던 그는 조선 땅을 떠난지 거의 6개월여 만인 다음해 6월 7일 마카오에 도착, 칼르리 교장 신부 밑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유학생활 6개월여 만인 1837년 11월 27일 성소의 꽃을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했다. 당시 17세(16세)의 어린 나이였다.
엄동설한의 날씨 속에 몇 달 동안 중국 대륙을 횡단하며 겪었을 어려움, 그리고 마카오에 도착해서도 2개월 만에 필리핀 마닐라로 피난을 가야했던 신산한 시기를 거치면서도 목자 없는 조선의 사제가 되기 위해 몸과 마음의 고생을 참아 나갔을 터였다. 언어와 기후 문화적 차이로 인한 곤란함은 또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김대건·최양업 두 동기생의 임종 기도 속에 칼르리 신부로부터 마지막 성사를 받았던 최방제 신학생이 남긴 말은 ‘신부님 감사합니다. 착한 예수! 착한 천주!’ 였다. 기술(記述)에 따르면 이후 신학생 김대건은 그의 무덤을 찾아 목놓아 울곤 했다고 한다. 이역만리 낯선 곳에서 사제직을 향한 일념 속에 동고 동락했던 동기를 잃은 슬픔이 얼마나 컸을지 전해져 오는 듯 했다. 그 아픔은 후에 아마도 조선 신자들을 위한 사제직의 의지를 더욱 굳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최방제 신학생의 일화들은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병상에서 십자고상을 입에 대고 ‘착한 천주! 착한 예수!’를 수없이 되풀이 했다던 그의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자주 머릿속을 스쳐 흘러갔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착한 예수 착한 천주를 소망했던 마지막 염원은 하나뿐인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며 신앙을 증거 했던 당시 순교 선조들의 마음과도 같지 않았을까.
지난 9월 18일 125위 시복시성을 위한 도보순례 취재차 방문하게 된 서울의 새남터·당고개·서소문 성지에서는 그 때문인지 한 분 한 분의 순교사화에 더욱 숙연한 심정으로 다가서졌다. ‘모든 흠을 깨끗하게 만드는 순교를 갈망한다’고 했던 새남터의 순교자 김면호 토마스의 외침은 특히 큰 울림이었다.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 신자의 씨앗’ 이라고 한 라틴 교부 테르툴리아누스의 말처럼 2백여년 역사에 교세 500만 명을 넘어선 작금의 한국교회는 이러한 순교 선조들의 피와 땀을 거름으로 해서 커질 수 있었을 것이다. 순교자 들이 보였던 뜨거운 신앙 증거의 삶은 이제 우리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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