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로 우리나라에서 사형집행이 중단된 지 꼭 5000일을 맞았다. 지난 1997년 12월 30일 사형수 23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이후 단 한 건의 사형도 집행하지 않고 14년째를 넘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 앞장서 온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뜻있는 종교·인권·시민사회 단체들과 국내외 저명인사들은 이날 서울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사형집행 중단 5000일 기념식’을 열고 사형제도 폐지에 하나된 마음을 모았다. 특히 참석자들은 사형폐지 문제에 관한 국회의 결단을 촉구하고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 통과를 위한 결의를 다졌다.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교회는 그간 그 어떤 종교나 단체들보다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입장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사형폐지로 대변되는 생명 수호를 위해 앞장서 오고 있다. 이는 ‘공권력이 명령하는 것까지도 어떠한 살인이라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가톨릭 교리서 2268항)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바탕하고 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도 지난 2007년 10월 가톨릭신문 기고를 통해 “오늘날 제기되는 사형제도의 존속이 범죄를 예방하는데 큰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단지 추상적인 가정에 불과하며, 실제적인 영향력은 확인된 바도 없고, 미지수”라고 역설하고 “사형이 아닌 다른 형벌을 적용하는 것이 공동선과 인간의 존엄성 수호에 더욱 부합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교회 안팎의 노력의 결과 사형제도에 대한 제반의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무르익었음을 고려할 때, 이제는 결단의 때가 이르렀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흔히 사형제 존치를 주장하는 측에서 강조하는 흉악범죄 억지력 등 사형제도의 효용성은 이미 그 근거가 없는 것으로 객관적인 판가름이 났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인과응보와 보복의 심리에 바탕을 둔 사형제도의 존치 주장은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설득력과 논리성을 상실한 지 오래다.
이제 사회적 논의의 초점은 사형제도의 범죄억지력이 아니라, 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을 올바로 바라보고 우리 사회에 내재한 죄의 구조를 극복해나갈 사회적 역량을 함께 쌓아나가는 데 맞춰져야 할 것이다.
과거의 관행과 사고를 넘어서는 중대한 결정을 하는 데에는 그에 맞갖은 신중함과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충분한 근거와 필요성까지 제시된 사안에 대해 결단을 내리지 않는 것은 시대가 요청하는 우리 자신의 책무를 포기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