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옛날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한 날 하느님이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재미있는 놀이 없을까?” “숨바꼭질 어때요? 하느님이 숨으시면 저희가 찾겠습니다. 찾기 전에 숨은 데서 나오시면 안 됩니다.” “좋다. 내가 숨으마.” 그렇게 해서 인간의 하느님 찾기 놀이가 시작됐습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하느님을 찾아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높은 산위에도, 깊은 바다 속에도, 숲 속에도 가보았지만 하느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고 끝나지 않는 놀이는 무의미해!” “하느님이 다른 곳으로 떠나신 게 아닐까?” “숨바꼭질 때문에 하느님이 사라졌으니 숨바꼭질을 아예 그만두자”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느님! 저희는 숨바꼭질 그만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더 이상 하느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지 않으면서 생겨난 것이 전쟁이었습니다. 군대가 생기고, 무기 장수가 생기고, 자꾸만 전쟁이 터졌습니다. 세상이 혼란하니 법이 생기고, 법이 생기니 도적이 생기고, 도적이 생기니 세상은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은 당장이라도 숨은 데서 나와 제 맘대로 놀이를 끝낸 인간들을 혼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세상에 아직 몇몇 바보들이 있어서 이리저리 하느님을 찾아 숨바꼭질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칸트는 이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이성이 기울이는 관심을 세 가지로 정리한 바 있다. 첫째,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둘째,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셋째,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그러면서 첫째 물음에 답하는 것이 형이상학(철학), 두 번째 물음에 답하는 것이 ‘도덕’, 셋째 물음에 답하는 것이 ‘종교’라고 정의했다. 그가 종교의 영역을 ‘희망’에서 찾은 것은 굉장한 통찰이다. 안다는 것, 행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쉽게 얻어질 수도 있지만, 희망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끝없는 바람이며, 끝없는 과제의 영역이다. 희망은 말 그대로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상이기에 현실에서의 경험과는 모순될 때가 많다. 희망으로는 이러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 되고,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된다. 돈을 벌어 베풀며 살고 싶은데 벌리지 않고, 걱정 없이 살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도 희망하는 만큼 현실은 달라진다고 믿고, 그런 이상을 현실에서 이뤄보려는 ‘바보’들도 있다. 이 ‘모순’을 살아내려는 ‘바보’들을 세상에서는 신앙인이라고 한다.

희망은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이기도 하다. 희망하는 만큼 몸도 움직이게 되기 때문이다. 희망을 가지는 순간 그것은 삶의 한복판에 들어와 삶을 변화시킨다. 희망은 구름 너머에 있거나 미래의 언제이기만 한 게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바꾸는 원동력이 된다. 이상을 꿈꾸고 희망을 가지는 만큼 현실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이상과 희망으로 세상을 이기게 해주는 것이 우리 믿음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래서 몰트만이라는 신학자는 “‘희망이 신앙’이다. ‘절망이 죄’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희망을 갖고 그것을 전파하는 일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암울할 것 같은 현실이 암울함으로만 끝나지 않는 것은 희망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포기한 하느님과의 숨바꼭질 놀이에 첫 약속을 믿고 오늘도 하느님을 찾는 술래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보같은 술래들은 진리에서, 정의와 사랑에서 하느님의 흔적을 발견하고 통쾌해 한다. 정의의 그림자를 드러내려 애쓰는 이 바보들에 의해 실제로 정의는 이루어져 간다. 포기 않고 하느님을 묻고 찾되, 인간 안에서 그렇게 하는 이들의 희망과 이상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간다. 그래서 끝나지 않은 하느님과의 숨바꼭질 놀이는 재미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