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생물권 보전지역 지정(2002년), 세계 자연유산 등재(2007년)와 세계 지질공원 인증(2010년)을 받음으로써 전 세계 유일한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 3관왕에 오르는 데 이어 ‘세계 7대 경관’에 선정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가장 아름다운 강정해안이 국가시책이라는 명분 아래 공권력을 앞세워 파헤쳐지고 멸종 위기의 동식물들이 죽어가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은 한없는 자괴감에 빠지고 만다.
9월 2일 새벽 5시, 정부는 1000여 명이 넘는 경찰병력을 동원해 주민들과 운동가들을 연행하고 구럼비 바위로 들어가는 모든 통로를 2~3m 높이의 차단벽으로 봉쇄했다.
며칠 후 구럼비 바위는 깨지기 시작했다. 중장비의 굉음은 찢길 대로 찢겨진 강정마을 공동체를 끝까지 짓이기겠다는 소리요 우리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 소리이며 세계적으로도 드문 1.2km의 통바위 구럼비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최후통첩의 소리였다.
이뿐만 아니라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과 중덕 삼거리 일대에서 청동기시대부터 탐라국 전후의 유물과 조선시대의 유구 등이 다량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조차 ‘매장문화재보호법’을 어긴 문화재청의 묵인하에 밀어붙이고 있다.
2002년 해군기지 최적지로 선정된 화순항이 주민들의 강한 반대로 무산되고 3년 후 위미에서조차 반대에 부딪히자 애초에 후보지에도 없던 강정이 느닷없이 선정됐다. 마을주민 80명 정도만이 모여 박수로 해군기지 유치결의가 이뤄진 뒤 마을은 부모형제간에도 서로 등을 돌리고 2/3가 넘는 사람들이 적대감, 우울증, 불안, 강박 등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다.
제주도 면적의 90%에 달하는 비(非) 절대보전지역을 놔두고 하필이면 10%의 절대보전지역에 해군기지를 선정한 진실은 무엇인가? 지정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여론수렴이나 법과 절차가 정당하게 이뤄졌는가?
국가가 공포한 ‘평화의 섬’에 분쟁의 표적이 되는 군사기지를 왜 만들어야 하는가?
2009년 4월 제주도가 국방부 및 국토해양부와 체결한 해군기지 업무협약서의 제목이 서로 다른 이중계약서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주민들의 소리를 정부는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불과 60여 년 전 부모형제가 죽창에 찔려 고통으로 죽어 가는 모습이 우리에게 아직도 아픔으로 남아 있다. 이념의 틈 사이에서 죄 없는 많은 도민들이 희생당해야 했던 제주도이기에 평화에 대한 갈망은 우리의 생명과도 같이 절실하며 그것을 잃었을 땐 우리의 생명도 잃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우리다.
우리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사회적인 문제에 교회가 관여하는 게 옳지 않다고, 국가안위를 위한 것인데 왜 반대하냐고 반론을 편다. 그러나 힘없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가난하고 병들고 비천한 이들을 사랑하셨던 예수님을 따르겠노라 그의 제자가 된 우리가 이 상황에서 무관심한 방관자나 비판자로 있어야 하는가?
공권력으로 모든것을 막아 버린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지만 이제부터라도 기도하자. 강정 코사마트 사거리 한 모퉁이에 있는 ‘평화기도소’에 가서 보고 듣고 느끼며 그들과 함께 기도하자.
우리 기도의 힘이 모아졌을 때 평화의 섬에 진정한 평화와 아름다운 자연이 되살아나고 갈라진 강정마을 공동체가 다시 하나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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