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화를 재구성하여 만들었다는 화제의 영화 「도가니」를 보았다. 한 신흥종교단체와 개인의 사례라고는 하지만 종교가 거대한 위선과 죄악을 가리는 위장막으로 기능하는 것 같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영화의 내용만을 보면 종교가 세상의 희망과 구원이기는커녕 세상을 오히려 어지럽히고 위험에 빠뜨리는 ‘도가니’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잖아도 내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하여 일부 기독교 교단이 추진하고 있는 창당 움직임에 뭔가 목울대가 간질거리고 찝찝해있던 차였다. 그냥 콧방귀만 끼고 방관하기엔 추진주체들의 언행이 너무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2005년 대구의 한 집회에서 “여신도가 나를 위해 속옷을 내리면 내 신자고, 그렇지 않으면 내 교인이 아니다”고 말한 장본인이 창당 작업의 전면에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는 그 발언 이후에도 2006년 천안에서 “여자가 짧은 치마를 입고 교회에 와서는 안 된다”는 여성비하 발언을 했는가 하면, 지난 대선 때는 “이명박 장로를 찍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지우겠다”는 무지막지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얼마 전 기독교 지도자 포럼에서 “출산율 저하를 막기 위해 다섯 명의 아이를 낳지 않으면 감옥에 가야한다”라는 희한한 말을 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동안 종교가 그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혹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부단한 정당정치 참여를 시도해 왔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과는 상관없이 번번이 제도권 진입에는 실패하였고, 그때마다 그 종교의 영향력은 되레 감소되고 말았다. 종교가 인간의 죄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활동이고, 절대적 진리와 가치를 깨닫게 하는 향도 역할을 한다고 보았을 때, 세상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고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종교가 세속의 권력에 집착했을 때 그 본질의 힘을 잃어버리는 건 물론이거니와 불신과 초라한 조롱만이 남게 됨은 지당한 귀결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개신교의 어느 목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환경이나 평화 등 세속 문제에 대한 교회의 태도와 역할에 대해 ‘교회의 역할’과 ‘정부의 역할’을 지혜롭게 구분해야 한다면서 ‘모든 종교를 통틀어 종교는 정부의 역할을, 정부가 종교의 역할을 대신해서도 안 되며 각각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얼핏 종교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만을 탐구하고 설파해야 한다는 타당한 주장처럼 생각되지만, 한편으로 종교는 세속의 일에 얼씬거리지도 말라는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땅의 모든 종교인은 신앙인이면서 한 나라의 국민이기도 하다. 즉 ‘교회시민’과 ‘국가시민’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국가시민으로서는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교회의 진리를 토대로 얼마든지 사회정의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책무를 지닌다. 누구나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개인적 혹은 종교적 신념을 주장하며 그 관철을 위해 집단적 표의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 총리를 지낸 저명한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는 신앙인들이 신학 이외의 세속 학문을 멀리하고 사회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경향을 통렬히 비판하며, 신앙의 ‘사회성’을 부각시키고 신앙인들이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것을 주장하였다.
우리는 이 두 영역을 헷갈려하지 않고 각각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시민으로서의 역할 모두를 적극적이고 충실하게 감당해야 하리라. 이를 혼동하여 종교를 통해 정치적, 세속적 권력을 도모하려고 했을 때 오히려 종교의 근원적 능력과 영향력을 잃게 될 것이므로 종교의 세속화는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종교와 세상의 경계지점에서 우리는 언제나 고민한다. 사회 현안에 대한 항의집회에 참여하는 등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종교라는 피켓을 내걸었을 때는 신학적 기여와 진리의 토대를 먼저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정의를 적극적으로 추구하지 않는다면 종교는 짠맛이 증발된 소금과 같아 그 본연의 영향력을 잃고 말 것이다.
종교가 세속화되고 타락했다고들 하지만 음지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며 헌신하는 종교인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세상이 요란 시끌벅적해질수록 종교인들의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 진리의 바탕 위에서 우러나오는 초월적 가치의 선한 영향력은 세속의 권력보다 훨씬 힘이 세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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