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첫 전쟁은 테러에 대한 보복전으로 시작되었다. 이번 전쟁을 두고 미국은 항구적 자유(Enduring Freedom)라고 이름 붙이고 테러세력 일망타진에 나서고 있다.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권은 이번 전쟁을 반 문명적, 반 인류적 테러리즘에 대한 응징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과격 이슬람 단체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누구에 대해서도 무차별 대항해 나간다는 견해와 아람인들에게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위한 저항은 테러가 아니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는 가운데 빈 라덴의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는 전세계 무슬림들에게 미국에 맞서 성전을 감행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미국은 이번 전쟁을 단기적으로 오사마 빈 라덴을 지원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고 장기적으로는 테러 세력의 뿌리를 뽑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야만적인 테러를 응징하기 위한 것일지라도 전쟁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비판과 함께 무분별한 보복이 문명의 충돌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을 모은 것은 귄터 그라스를 비롯한 노벨상 수상자들의 제안이었다. 그들은 「미움을 억제하고 미움의 원인을 제거할 때 테러는 사그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볼 때 보복전에 소요되는 무려 200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으로 돌려 근본적인 테러 원인을 찾아 인종차별과 빈부격차를 해소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또 이 기회에 이슬람 문명을 바라보고 올바로 이해하려는 애씀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의 애씀은 구약성서 창세기를 다시 읽는 데서부터 출발하여 서구의 왜곡된 정보와 자료가 아닌 우리의 주체적인 시각과 관점, 우리의 잣대와 입장에서 이슬람의 세계를 똑바로 바라보는 일이라고 하겠다.
이슬람교는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와 함께 아브라함을 공동 조상으로 받드는 같은 성서의 백성이었다. 창세기에서 보듯이 아브라함은 부인 사라와 그의 이집트 출신 몸종 하갈로부터 이사악과 이스마엘이란 두 아들을 두게 된다. 그로부터 이사악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어 훗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디고 이스마엘은 아랍 민족의 조상으로 그 가문에서 무함마드를 낳게 된다.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이 모래바람 거세게 불던 브엘세바 모래들 위에 쓰러져 울부짖었던 그 원한을 아랍인들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두 민족의 조상은 같은 아버지를 가진 형제였으나 처음부터 갈등과 불화를 빚었으며 기원전 19세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2000년까지 무려 4000년 가까이 형제살육의 역사를 이어온 것이다. 두 민족은 함께 유일신을 믿고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하는 척박한 땅에서 살아온 오랜 역사아 전통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무슬림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퇴폐한 성문화와 극단적인 물질주의 문명을 배척하고 이슬람의 원리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며 2천년 넘게 살아온 고향을, 이스라엘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한 투쟁에 나서고 있다.
지난날 갈등과 불화의 씨앗이 아브라함 시대에 뿌려졌다면 지금 겪고 있는 테러와 보복전쟁의 뿌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에 대한 서구의 개입이라고 하겠다.
노암 촘스키는 미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을 두고 숙명의 트라이앵글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듯이 이번 테러가 일어난 데에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서구의 중동정책이 그 원인이었음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무슬림들에게는 끊이지 않는 테러가 빼앗긴 땅을 찾기 위한 생존의 투쟁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도 지난날 일본 제국주의에 조국을 잃었을 때 끊이지 않았던 투쟁과 테러를 통해 민족혼과 독립정신을 이어오지 않았던가? 지난 날 칼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이 자본주의의 진로를 수정하게 했듯이 이슬람 원리주의 또한 훗날 서구 문명의 병리현상에 대한 예방과 치료에 명약이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야만적인 테러와 패권주의 보복전쟁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전쟁이 테러의 해결책이 될 수 없고 테러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아닐 것이다. 테러리즘과 패권주의의 대결은 인류사회를 공멸시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야만적인 테러와 패권주의의 보복전쟁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전쟁이 테러의 해결책이 될 수 없고 테러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아닐 것이다. 테러리즘과 패권주의의 대결은 인류사회를 공멸시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문명 교류의 해이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평화의 날 담화문에서 「사랑과 평화의 문명을 위한 문화간 대화」를 촉구한 바 있듯이 대화와 이해를 통해 사랑의 문명과 공존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지금 미국과 영구은 테러 보복전을 즉각 중단하고 오만했던 패권주의의 갑옷을 벗어던져야 할 것이다. 문명에 대한 이성적인 대처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