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쇄신의 노력을 통해 교회의 구성원인 성직자와 수도자와 평신도가 서로 기도하고 격려하며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나가야 한다.
요사이 우리 교회 내에 사제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끔 인터넷 등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알려져서 신자들이 당혹감과 혼란을 겪는 경우가 있다.
과연 그러한 행위가 교회 발전을 위해 올바른 일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의혹만을 가지고 남을 비난하고 평가하는 『아니면 알고』식의 무책임한 형태가 사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사제들은 사제품 받는 날로부터 항상 교우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사제의 말 한 마디와 복장과 걸음걸이 뿐 아니라 일거수 일투족을 일일이 교우들로부터 진찰을 받아야 한다. 그것 때문에 사제는 병원에 일부러 가서 건강에 이상이 있는 지를 진단을 받을 필요가 없을 때가 많다. 왜냐하면 사제가 미사 중에 기침을 크게 하면 「왜 크게 하는가」를 물어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목소리가 좀 작게 강론을 하게 되면 「어디가 아파서 힘이 없는가」를 물어 보며 교우들이 병의 진단을 내려주고 처방약을 사다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신자들의 그러한 관심은 사제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당해야 하는 고충도 많다. 가끔은 신자들의 진찰이 오진이 되어 사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제는 항상 교우들에게는 자기만의 오빠이어야 한다. 혹시라도 자기가 아닌 다른 교우들과 식사를 한다거나 누구와 가깝게 어울린다고 소문이 나면 시기, 질투가 발동되어서 그런지 사제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자기만의 잣대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제를 가장 아끼고 협력을 잘하는 사람들 중에 더욱 시기, 질투를 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사제를 보호하고 도와주고 지켜준다는 좋은 뜻이 사제에게 많은 아픔을 안겨 줄 수 있기도 하다.
신자들은 사제가 목자로서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는 라틴어 격언처럼 1,000명이면 1,000사람의 마음에 들어야 하고 만 명이면 만 명 모두의 마음에 들기만을 바란다. 그래서 자기만의 오빠, 자기만의 못자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이러쿵, 저러쿵」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럴 때마다 사제는 교우들의 입살에 오르내리는 것도 그들에게 봉사하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교우들이 너무나 사려깊지 못하여 공동체에 해를 끼치고 분열시키는 불필요한 말이나 행위들을 하는 것에 대해 정말 안타까울 때가 많다.
사제가 본당에서 근무하면서 본당의 발전을 위해 교우들에게 봉사하라고 하면 못한다고 거절하는 사람도 많다. 대부분 그들이 거절하는 이유는 시간이 없고, 일이 바빠서, 등등의 핑계를 댄다.
그러나 본당을 위해서 봉사할 시간은 없으면서 남을 비방하고 깎아 내리고 판단하는 일에는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도 많다. 정말 우리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며 복음을 세상에 전하고 세상 끝 날까지 복음의 선포자로서 임무를 다해야 할 공동체이다. 그런데 시기와 질투 때문에 공동체에 상생(相生)의 기회를 저버리고 사랑의 실천을 소홀히 한다면 교회로서의 본연의 임무를 다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정말 교회를 위하고 사제를 위한다면 인간적으로 부족하고 약한 모습들을 볼 때마다 모갖로서 그 부족함을 메구리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는 신자가 더욱 필요하다.
이제 첫 사제로서 출발한 젊고 패기에 찬 사랑스런 분들을 볼 때마다 더욱 기도가 필요하겠구나 하면서 나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젊다는 자체만으로 교우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나 시기와 질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순수하고 소박한 열정에 불타 사제로서의 첫 시작을 하는 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올곧은 마음으로 평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들이 기도하고 지켜주는 마음이 더욱 절실해 진다.
교회 안팎으로 우리는 많은 도전을 받고있다. 교회 공동체는 항상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에 그 부족함을 주님의 은총으로서 채워갈 수 있는 기도와 격려와 희생이 더욱 아쉬워지는 때이다.
유일하신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풍토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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