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때면 아마도 ‘10·26 재·보궐 선거’가 끝났을 것입니다. 그 결과에 희비가 엇갈렸을 터이지만, 꽤 많은 이들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가져다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태까지의 투표 참여율을 놓고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흔히 정치적 무관심, 심지어는 ‘혐오’ 상태란 말이 생기기까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다음의 교회 가르침을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겠습니다.
“소속 공동체의 운명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에 흔히 실질적 장벽이 되는 문화적 법적 사회적 장애를 극복하려면 정보와 교육 분야의 연구가 필요하다. 국민들에게 부적절하거나 잘못된 참여 관행을 부추긴다거나, 사회 정치 생활 영역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거부하는 분위기를 널리 조장하는 모든 태도에 관심을 기울이고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선거 과정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에 제한을 두어서 많은 경우에 국민들이 투표하는 것을 꺼리기까지 하는 관행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191항)
“정보는 민주적 참여를 위한 주요한 도구 가운데 하나이다. … 정보의 객관성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가운데 특별히 주목하여야 하는 것은 소수의 사람이나 집단들이 조종하고 있는 뉴스 미디어 현상이다. … 이는 전체 민주주의 제도에 위험한 결과를 미친다.”(사회교리 414항)
참여를 통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는 특히, 정보화 사회에서는 언론의 역할과 선거법과 같은 법적 장치가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특정 언론사가 특정한 가치를 지향하며 보도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시민의 ‘정보의 객관성에 대한 권리’까지 훼손해도 괜찮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특정한 가치를 지향한다고 표명하면서 실제로는 ‘공동선’을 훼손하고 특정 집단의 힘과 이익을 도모한다면, 이는 전체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위험에 빠뜨립니다. 국민은 그 정보의 객관성, 진실성을 식별해내기가 쉽지 않기에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대중매체가 돈벌이가 되는 사업”으로 공공연하게 떠오르고, 특정 이익 집단을 위해 잘 못 이용될 수 있음을 고려하면, 정보의 객관성이 갖는 중요성은 더욱 무겁습니다.
교회의 언론을 포함해서 우리나라의 대중매체가 과연 정보의 객관성, 정보의 윤리성, 정보의 진실성에서 얼마나 떳떳한지 성찰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상황과 사실들, 제시된 문제 해결책을 모르고서는(혹은 잘못 알고는)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며, 참여가 없다면, 혹은 참여하더라도 잘못된 정보를 갖고 참여한다면 공동선을 실현하기보다는 오히려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같은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멀리는 일제 강점기의 언론이 쏟아낸 정보들이 그랬고, 불과 몇십년 전 과거정권 시절에도 그랬습니다. 대중 매체를 소수의 사람이나 집단이 조종하는 그런 시절은 지나갔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까?
우리 공동체가 직면한 상황들, 예를 들어, 한국과 미국 사이의 FTA(자유무역협정)의 내용과 그 영향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객관적이며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을까요? 제주도의 강정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군기지 건설에 관해서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합편성 및 보도 전문 방송 사업자를 선정한 배경과 과정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핵발전소 건설 정책에 관해서는? 교회의 현안 가운데, 명동성당의 개발과 관련해서, 계성여고의 이전과 관련해서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은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분명히 우리 공동체가 처한 상황과 사실들이며,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 인간의 존엄함과 공동선에 미치는 영향이 클 텐데도 객관적이며 진실한 정보를 대하기 어렵습니다. 상황이 너무 전문적이고 복잡하기 때문에, 혹은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로 왜곡했기 때문에, 우리의 대중매체들이 진실성과 객관성을 갖춘 정보를 전달할 능력과 의지를 잃은 것은 아닐까요? 혹은 대중매체 자체가 그 역할을 포기하고 “소수의 사람이나 집단들”로서 일종의 지배 권력이 된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는 정보의 수동적 소비자(?)로 전락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혹시 “소수의 사람이나 집단들이 뉴스 미디어를 조종하고 여기에 정치활동과 자본 및 정보를 다루는 기관들의 유착”까지 더해진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의 훼손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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