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세속적 도시를 벗어나 여행할 필요가 있다. 가까운 명산이라도 간다면 얼마나 좋은가. 그리하여, 지리산! 나는 지리산행을 택했다. 노고단을 오르면서 낮은 자세로 살아가는 억새와 나무를 만난다. 바닥에 깔려있는 잔 돌멩이가 밟히고, 알록달록한 비늘을 반짝이며 꿈꾸는 가을 숲. 어디서 날아왔는지 멧새 두세 마리가 포로롱 곡선을 그으며 나뭇가지에 앉아,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한다.
피조물치고 하느님을 찬미하지 않는 건 없는 것 같다. 꽃산딸나무를 비롯하여 모감주나무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무들이 양팔 기도하는 자세로 손을 높이 쳐들고 있다. 2천 년 전에 호산나를 외치던 그때처럼. 딱새와 노랑할미새도 오종종 모여, 바흐의 칸타타 147번을 하느님께 봉헌한다.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 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가슴에 풍경이 울린다.
욕심을 비우면 마음의 창이 투명해지는가. 산하를 굽어다보니 하느님께서 처음 지어낸 세상이 그대로 들어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고 하신 예수님. 이젠 소출할 때가 되어 세상이 분주해야 하건만, 세상의 알곡이 가라지와 뒤섞여 어지럽기만 하다. 실로 탈곡하고 석발기에 넣어 알곡을 선별하는 일만 남았다.
희한하게, 세상의 피조물들 가운데 인간만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는 듯하다. 악착같이 돈을 벌어 좋은 집을 사고 고급 가구를 들여놓고 그것을 행복이라 여기는 사람들. 그러나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하신 말씀이 영 마음에 걸린다. 진실로 영성을 리모델링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세상을 벗어나 산행을 하다 보면 하느님의 옆구리가 보인다. 산 능선에 드리운 운해에서 하느님의 부드러운 뺨을, 한밤중 쏟아질 것 같은 별들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황홀히 만난다. 새벽녘 피어오르는 물안개에서는 아기 예수님의 지극한 숨결을 읽는다. 낙엽 촉촉한 오솔길에서는 또 성모님의 자애로운 속삭임을 듣는다. 아, 어느 것 하나 사랑이 머물지 아니한 것이 없다.
그러다 세상에 돌아오면 숨 막히는 현실의 굴레들. 세속적인 속도와 관성에 물들어 하느님과의 언약을 잊는다. 다시금 삭막한 현실의 갑주를 입고 비정하리만큼 계산적인 외인이 된다. ‘하느님은 사랑이다’를 고백했음에도 ‘나는 사랑이다’를 말하지 않는 세리 같은 사람이 어찌 한 둘이랴. 하느님을 중심에 모신게 아니라 자기를 중심에 놓고 합리화 하는 사람들. 하느님의 잣대가 아니라 자신의 잣대로 편리하게 산다.
미사 참례하고 성당활동을 하면서도 형제자매들을 험담하여 상처 주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심지어 사제까지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아, 첫영성체 때 우리는 얼마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가. 성서필사를 하면서, 묵주기도를 하면서, 철야기도를 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가. 그것이 분명 악어의 눈물이 아니었다면 우리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갈수록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반대하여 갈라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거기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밤이면 숱하게 켜지는 예배당의 십자가들, 산모롱이 여기저기 늘어나는 사찰들. 종교시설이 불야성을 이루는데 참다운 신앙인은 종적을 감추었다. 문득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이 새롭다.
어렸을 적에 보았던 성화가 생각난다. 수많은 양떼 앞에서 예수님이 어린 양 하나를 품은 그림. 탕자는 물론,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 진정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마저 용서하고 기도해야 한다. 사제와 평신도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아집과 편견을 버리고 섬겨야 한다. 세상에 빛을 가져오겠다면 스스로 썩어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한다. 믿음마저 고갈되어버린 신자유주의 시대. 새삼 수단에서 그리스도적 삶을 실천한 이태석 신부의 목소리가 잠시 나의 시간을 멈추게 한다. “하느님은 정말 사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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