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꽤 긴 시간을 혼자 걸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아침에는 서둘러 가기 바빴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큰 찻길도 2개나 건너야 하고 낯선 사람도 조심해야 했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면 제일 먼저, 마음에 드는 돌멩이를 고릅니다.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아야 발로 찰 때 아프지도 않고 적당한 거리에서 멈춥니다. 똑바로 차기도 하고 목표물을 정해서 맞춰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없을 때는 힘껏 발로 차고는 마치 돌멩이가 혼자 도망이라도 갈 것처럼 뛰어서 쫓아가기도 합니다. 돌멩이가 멈춘 집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면 잠시 멈춰 듣기도 하고 어느 집 담 밖으로 늘어진 라일락꽃 향기가 너무 좋아서 담 밑에서 쪼그리고 앉아 저의 돌멩이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대문이 열린 집 앞에, 묶여진 채로 꼬리를 흔들어 대는 강아지라도 만나는 날은 돌멩이를 얼른 주워 들고 강아지와 한참을 놀다가 다시 돌멩이를 발로 차면서 함께 집으로 걸어옵니다.
그 돌멩이는 지루하고 위험한 길을 함께 걸으면서 혼자가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해 주었고 힘들고 지치지 않게 해 주었던 저의 길동무였습니다. 가끔, 왜 사회복지사가 되었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제가 사회복지사를 평생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는 돌멩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무슨 큰 희생정신과 봉사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때 그 돌멩이처럼 그저 힘들고 지친 사람들과 길동무가 되어 함께 살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요즘은 영화 도가니를 통해 알려진 파렴치한 어른들과 어린이집 폭력 교사들의 기사를 보면서 슬그머니 화가 납니다. 돌멩이보다 못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정말 걱정입니다. 서로에게 소박한 길동무가 되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