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서 고인이 가톨릭 신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해 보는 방법 중 하나가 빈소에서 구성지게 울려 나오는 ‘연도’ 소리의 유무가 아닐까 싶다.
여러 명이 한데 어울려 전통 가락의 운율에 맞게 주거니 받거니 기도를 바치는 모습은 한국교회에서만 목격할 수 있는 아름다운 광경임이 틀림없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정성껏 고인의 천상 영복을 빌어주는 장면에서는, ‘연도는 죽은 이와 남아있는 사람들을 연결시켜 주고 성인들의 통공으로 같은 생명을 누리고 있다는 신앙 고백’이라고 한 교회내 학자의 표현이 새롭게 떠올려진다.
연도(練禱)란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한 기도라는 뜻. 연옥의 연(煉)자와 기도의 도(禱)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라 한다. 많은 이들이 연도를 서방교회 기도문의 번역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교회내 전문가들은 연도가 초기 교회 선조들이 만들어낸 순수 위령기도의 일종으로 전통적인 곡(哭) 의 음률과 교회의 기도문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한국교회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상제례 문화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 천주교회의 상제례 문화는 연도의 문화로 대변된다. 신자들 사이에서는 예로부터 이웃에 초상이 나면 ‘연도 났다’ 는 표현이 쓰여 졌고 ‘연도하러 가자’는 말은 곧 문상가자는 말을 대신 하는 것이었다.
연도의 시작을 정확히 밝혀주는 문헌은 없으나 1700년경으로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창립과 더불어 제사 문제로 인한 박해와 관련 탄생하였다는 것인데, 전통적인 제사가 교리에 어긋나는 것을 알게 된 신자들은 인륜에 해당되는 장례와 제사를 새로운 의식으로 진행해야 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연도가 생겨나게 됐다는 것이다.
1886년 신앙 자유화 이후 연도는 연령회를 통해 장례 봉사의 주요한 활동이 되었다. 또 6?25 직후 도입된 레지오 마리애를 통해서도 상가 봉사 때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됐다. 이 과정에서 연도를 통한 상가 봉사 활동이 선교의 원동력이 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박해의 원인을 피하기 위해 고안해 낸 신앙 조상들의 연도 문화가 후대에 와서 선교의 주요한 근원이 될 수 있었던 정황들은 여러모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다.
우리 주변 본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연령회와 레지오 마리애 단원의 상가 방문 및 연도 바치기 활동은 알고 보면 이렇게 초기 교회 때부터 내려온 아름다운 전통의 흐름이 깊게 자리매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의 지인 중 한 사람이 오랜 냉담교우로 지내다가 최근 모친상을 계기로 다시 열심한 신자로 돌아왔다. 몸을 사리지 않고 장례를 도와준 본당 연령회원들, 그리고 지속적으로 빈소를 찾아 모친을 위해 연도를 바쳐준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정성이 저절로 발걸음을 성당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모친과 평소 일면식 없던 이들 까지 같은 가톨릭 신자라는 이름으로 빈소를 찾고 또 성의를 다해 진지하게 연도를 바치는 모습이 다시금 자신을 신앙으로 이끄는 무언의 손길 같았다는 고백도 들려줬다.
신앙 선조들의 자취를 품어 안은 채 이백년 가까운 시간을 흘러 우리 안에 스며든 연도 가락의 의미가 새삼스럽게 들리는 위령성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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