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일 복자위에 오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6년 성 프란치스코의 도시인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소집한 세계 평화를 위한 종교지도자 모임 25주년을 맞아 10월 27일 아시시에서 열린 행사는 갖은 폭력이 난무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로 하여금 종교와 신앙의 의미를 새롭게 돌아보게 한 자리였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초청으로 전 세계에서 자리를 함께한 타종교 지도자들과 비신자 대표들은‘진리의 순례, 평화의 순례’를 주제로 한 이번 행사에서 세계 평화와 정의를 위한 종교의 역할과 종교인들의 몫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교황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듯 오늘날 세계는 수많은 갈등과 이로 인한 크고작은 전쟁뿐 아니라 사회?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훨씬 더 광범위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때문에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력 분쟁을 제거하는 것 이상이 요구되는 게 현실이다.
특별히 교황은 이번 행사에서 지구상 곳곳에서 난무하는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종교를 사용하는 현실을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아울러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행위, 하느님과 객관적 도덕 기준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서 비롯한 ‘인간성 상실’로 폭력이 증대되는 현실을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굳이 교황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가까운 우리 현실을 잠시만 돌아보더라도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의 양상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폭력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일부 종단의 강압적인 선교 방식, 종교재단 학교와 시설 등에서 행해지는 반강제적인 종교교육, 종교의 이름을 빌려 이뤄지는 불법적인 개발과 투자, 종교시설이나 단체에서 이뤄지는 반강제적인 기부와 헌금 같은 전근대적 종교적 운영기제 등도 실상은 종교의 얼굴을 한 폭력에 다름 아니다. 이렇듯 종교의 이름으로 빚어지는 비인간적인 행위들은 하느님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져 인간을 타락시키고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기준을 빼앗아 결국 폭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같은 현실은 우리 교회 안에서도 교회 지도자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신앙의 이름으로 폭력적 기제들이 작동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이번 행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신앙을 정화해가는 과정에서 ‘하느님 평화의 도구’가 되려고 노력할 때 세계 평화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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