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마 전만 해도 성직자들에게조차 생경하게 들렸던 「문화의 복음화원」을 설립하였고, 서울대교구에서는 올해 교회미술의 체계화와 활성화를 통해 문화의 복음화를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며, 10주년을 맞이한 그리스도사상연구소는 복음의 진리가 고유 문화에 뿌리내려 토착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기본입장을 재천명하면서 특히 올해 청소년사목의 토착화를 강조했다. 또한 수원교구 안성본당은 문화예술을 통한 선교활동을 위해 100주년 기념성전을 문화공간으로 개방하여 전시회와 같은 각종 문화행사를 지역주민과 함께 실시해왔다.
교회 안에서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들은 분명 기존의 선교와 사목에 한계를 느끼고 문화의 시대에 적합한 방법을 도입,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들이다. 그만큼 현 교회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교회가 시대적 징표를 제대로 읽고 사회변화에 적합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소수 깨어있는 자들에 의해 문화의 복음화가 추진되고 있음을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하지만, 그냥 넘길 수 없는 아쉬운 점은 문화의 복음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첫째로, 고급문화관에만 집착하지 말자.
문화의 범주를 단지 성미술이나 성음악과 같은 교회문화 내지 예술에만 국한시키는 협의적 문화관은 이 시대의 지배적 문화인 대중문화를 저급문화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 한가지 예로서, 신세대문화를 싸잡아 「거짓」「도피」「광란」의 문화로 매도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여기에는 문화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하는 「하위문화」가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된다. 대중문화를 단순히 반그리스도교적으로 적대시하는 일부 보수적인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의 태도를 우리는 견제해야 한다.
둘째로, 문화인류학적 관점에만 집착하지 말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현재세계의 사목헌장」을 통해 획기적으로 인류학적 문화관을 수용하여 민족과 시대에 따른 고유하고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였고, 이로써 토착화 작업의 기틀을 형성하였다. 이 헌장에서 『문화는 광의로는 인간이 정신과 육체를 연하하고 발전시키는 데 이용하는 모든 사물을 말한다』(53항 2절)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문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는 있지만 「무엇을 하는 것인가」라는 상징적 차원에 대한 관심은 결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민족적이고 고유한 문화를 강조한 나머지 최근의 급변하는 세계화 시대에서 지구문화와 지역문화가 서로 섞여 변용되는 대중문화의 역동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셋째로, 직접적인 생명과 죽음의 문화에만 집착하지 말자.
최근 들어 낙태, 안락사, 사형, 전쟁, 테러, 환경오염 등의 「죽음의 문화」를 만연시키는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교회가 대안으로 「생명의 문화」를 시민운동의 차원까지 확산시키고 있다. 그러나 교회가 생명문제를 생물학적이고 의학적인 차원에만 치우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간접적으로,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넣는 잘못된 가치관, 허위의식, 혹은 지배이데올로기 (예를 들어 『클수록, 빠를 수록, 많을 수록 좋다』, 집단이기주의 등등)와 같은 「보이지 않는 테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지 않는지 우려된다.
현실적으로 신자들은 이같이 보이지 않는 테러를 조장하고 있는 대중미디어 문화의 역기능을 비판하고 개선하려는 행위가 선교요, 복음화의 일종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넷째로, 「문화를 통한 복음화」에만 집착하지 말자.
최근 들어 본당들이 점차 열린 교회를 지향하며 지역사회와 연계하고자 각종 문화강좌나 전시회와 같은 바람직한 문화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의 복음화는 문화를 수단이나 방법으로 간주할 수도 있지만, 앞서 말한 생명과 죽음의 문화에서 보았듯이 문화를 복음화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는 「문화에 대한 복음화」뿐만 아니라 토착화된 「(교회)문화에 의한 복음화」도 문화의 복음화로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교구나 본당에서 단지 문화강좌나 문화행사를 실천하는 것으로 문화의 복음화를 다하고 있다고 안심해서는 안된다.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삶 자체를 표현하면서 동시에 갈등과 대립, 조화와 일치의 역동성을 내포하고 있는 문화가 신앙과 영성을 구체화하는 장이 되도록 문화의 복음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