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붙으면 교리교사 하겠습니다.”
해마다 11월이 되면 오래 전 걸었던 새끼손가락이 떠오른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코앞에 두고 몇 년 만에 찾아간 성당이었다.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고 원하는 대학에 붙여달라고, 그러면 교리교사를 하겠다고 하니 하느님 입장에서는 기가 찰 협상이었다.
올해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많은 학생들과 부모들이 ‘나처럼’ 성당을 찾았다. 평소 신앙생활에 열심이었던 이들이 더 많겠지만, 그 가운데는 ‘나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간절함으로 따지자면 모두의 기도는 평등하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당시 내 간절했던 기도에는 은총의 지위가 없었다. 그리하여 교리교사 2년이라는 협상을 이행하기는 했으나, 다시금 냉담이 찾아왔던 것이다. 하느님에게 받았지만 감사하지 못했고, 알았지만 느끼지 못했다.
우리 모두는 은총을 받았다. 더 많은 은총을 받기 위해 두 손에 받친 그릇을 깊고 넓게 만드는 것, 은총의 그릇을 땅에 떨어뜨려 깨뜨리지 않기 위해 두 손으로 단단히 붙들고 있어야 할 일도 우리 몫이다.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바로하면, 하느님에게 의지하면 은총의 상태는 더불어 온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주말,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대구 팔공산 갓바위에는 평소 주말보다 3배에 가까운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찰나의 기도, 그 기도하는 순간만이라도 세속을 떠날 수 없다면, 처음 받은 은총의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면 그 기도는 ‘요행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10년 전, 어느 때보다 ‘간절’했다고 느꼈던 내 기도의 은총 지위를 지금에 와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때보다 신앙 안에서 아주 조금은 자랐음이요, 그 또한 주님께 받은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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