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전문가들은 햇볓 정책을 적극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그리스도인도 이 나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발언할 권리가 있다.
고유한 의미에서의 「정치」가 아니라, 이 나라의 「공동선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의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국민의 권리에 속한다. 「햇볕 정책」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 성공 여부가 온 국민의 공동선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햇볕 정책을 찬성하느냐 또는 반대하느냐는 질문은 어느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못할 것이다. 햋볕 정책 자체가 아니라 그 정책을 이끌어 나가는 과정이나 방법에 관해서는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때는 내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인들이나 일반 시민들 중에는 벌써 햇볕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가정하고 북한의 「김위원장은 답방차 서울에 와야 한다」, 「김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곧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냉철하게 생각하면, 우리 관심의 초점은 김위원장이 서울에 오든 오지 않든, 그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할 것이며 그 말을 지킬 것이냐가 아니겠는가? 민중의 성급한 기대는 문제의 초점을 흐리기 쉽다. 햇볕 정책을 시작했으니 이제는 그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면 된다고 믿는 것은 북한의 「수령절대주의」가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 출판된 「黃長燁 秘錄 공개」(月刊組鮮社, 2001)에서 북한 공산주의 전문가인 황장엽씨는 햇볕 정책의 실효성을 비판하고 있다. 『북한은 외투를 벗을 생각조차 않는데, 자기가 먼저 벗은 외투를 북한이 벗은 것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207) 남한의 포용 정책이 누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지도 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김위원장은 존경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포용 정책」에 포용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김대통령의 유명한 「포용 정책」을 포용하고 있는 타고난 포용주의자처럼 행세하고 있는 것입니다』(189) 햇볕 정책 추진에 동참하는 모든 이가 한 번쯤 들어둘 만한 비판이 아닌가? 그러면 북한이 남한의 포용정책에 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의 남한이 대북 포용정책이 선의로부터 출발하고 있으며 남측의 요구는 남북의 평화적 공존을 실현하는 데 있을 뿐, 북한의 체제를 변경시킬 의도가 없고 또 그럴 능력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207)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남한의 햇볕 정책에 일방적으로 한계선을 긋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남한은 햇볕 정책은 추진되어야 한다면, 남한이 그것을 일관성 있게 끝까지 추진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가? 그렇다고 보고 싶으나 너무나 어렵게 느껴진다. 「부패」란 추방할 어떤 인간이 아니라 제거할 「사회 현실」이다. 얼마 전에 부패국민연대가 조사해 발표한 바에 의하면 중·고교생 10명 중 9명은 「한국이 부패한 사회」라고 답했다고 한다. 10명 중 3명 이상(33%)은 가장 부패한 집단으로 정치권을 꼽았으며, 이어 기업(12%), 공무원(11%), 법조계(9%), 언론계(9%), 교육계(8%)의 순으로 부패를 꼽았다고 한다. 한국 사회가 부패했다는 말이 아닌가? 요사이 신문에는 「이용호 게이트」라는 말이 나오더니, 그 다음은 「이형택 게이트」, 이제는 「청와대 게이트」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부패 게이트」라고도 한다. 대통령 직속 「부패방지위원회」에 기대를 걸어도 좋으냐고 묻게 된다. 이렇게 부패했다고 여겨지는 남한의 햇볕 정책을 역시 부패했다고 여겨지는 북한이 믿고 받아들이겠는가?
현재 매스컴을 통해 정계를 조금 들여다보면, 남한 정부가 북한에 대한 햇볕 정책에 있어서 좀 소극적 입장을 취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기다리다 지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 아닌지 묻게 된다. 대통령의 대통령직과 여당 총재직을 분리한 이후, 정부는 계속 햇볕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러한 정책이 정치인들, 특히 여권 정치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2002년 선거전이 이 나라 정치의 전부인 양 정치인들이 그렇게 움직이며 거기에 「내각제」까지도 운운하겠는가? 그러나 동시에 선거전의 대결에서 한편으로 여당은 햇볕 정책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을까, 다른 편으로 야당은 여당이 그것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한다고 비판하지 않을까, 그래서 결국 남한의 햇볕 정책이 퇴색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한에서 여당과 야당이 햇볕 정책을 어떤 정치적 목적을 위한 기회로 삼을 우려가 있다면, 그래서 남한이 결과적으로 북한에 대한 햇볕 정책을 어떤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한다는 오해를 받게 되면, 북한에서도 그것을 남한에 대한 어떤 정치적 목적으로만 이용할 우려가 충분히 있지 않을까?
햇볕 정책을 포함해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정책들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한 번쯤 들어두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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