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졸업 후 처음 일했던 곳은 입양기관이었습니다. 그곳에 취업하기 위해 면접시험을 볼 때의 일이었습니다. 면접관 대여섯 분 중에서 가운데 앉아 계셨던, 가장 직위가 높을 것으로 추측되는 한 분께서 제게 마지막으로 “미혼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질문하셨습니다.
순간,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아서 대답을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음…. 특별하게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저 역시 어떤 경우에는 미혼모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는 가슴을 치고 후회했습니다. 미혼모의 개념정의부터 해결방법, 정책제안까지 모범답안이 있었는데 저의 도덕성까지 의심받을 수 있는 생각이 왜 하필 그 순간에 떠올라 면접시험에서 그런 어리석은 대답을 했는지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합격자들이 기관 이사장님께 인사드리는 자리에서 그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넨, 면접시험 점수가 아주 우수하더군. 최고점이었어.”
저는 사회복지사이면서 동시에 미혼모였고 장애아를 둔 부모었고 한부모가정의 여성가장이였고 가출청소년이었으며 때론, 추운 겨울 지하철역 바닥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노숙인이었습니다. 저와 그들은 본질적인 면에서 하느님의 가장 귀한 창조물인 인간이며 그래서 존엄한 존재임이 똑같습니다. 종교, 문화, 언어, 국가, 인종이 달라도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얼마 전, 외국인 여성의 목욕탕 출입을 금지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떠오른 면접시험의 합격 요인이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우월감이나 편견을 갖지 말아야 할 사회복지사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세가 높이 평가되었던 듯하여 새삼 되새겨 보았습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