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점치지 말라고, 점쟁이한테 가지 말라고 점 보는 것을 말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그 이유라 여겨지는 것이 두세 가지 떠올랐다.
내 생각에는 가장 큰 이유가 아무래도 사람의 자유의지를 지키려는 의도에서인 것 같다. 점쟁이의 말을 믿으면 그만큼 나의 자유는 빼앗기는 꼴이 되고, 나의 자유의지도 힘을 잃는다. 점쟁이의 말을 전적으로 믿으면, 이론상 나의 자유는 제로(0)가 된다. 나의 인생은 나의 인생이라기보다도 점쟁이의 인생이 된다. 곧 점쟁이가 나의 인생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전에 내가 알고 있던 어떤 사람은 (직업은 고등학교 교사였다) 이사갈 때 꼭 점쟁이의 말을 듣고, 동으로 가라면 동으로 가고, 서로 가라면 서로 갔다. 그리고는 결과에 대체로 만족하는 듯했다. 이 사람의 인생의 지배자는 그가 신봉하는 용한 점쟁이였다.
둘째 이유는 용한 점쟁이의 경우는(그들은 실제로 미래의 사건을 잘 맞춘다) 대개 마귀나 악령의 도움을 받아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런 사람들과 접촉하면 결과가 좋을 리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말리는 것으로 판단된다. 말하자면 마귀에 영혼을 파는 것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점에 빠져드는 것도 일종의 중독이므로 이런 중독에 걸리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나도 한때는 이런 좋지 않은 습관에 빠져든 적이 있었다. 연초에는 으레 『토정비결』을 보았다. 어떤 해는 몇 해 분을 한꺼번에 미리 다 보아버리기도 했다. 노력은 않고, 공명심(功名心)만 강한 청년이었나보다.
또 한가지 웃지 못할 일은, 매일 아침 신문이 오면 맨 처음에 보는 것이 작은 칸에 짤막하게 적혀 있는 그날의 나의 운세(運勢)였다. 그것에 따라 나도 모르게 일희일우(一喜一憂)했다. 어느 틈엔가 단단히 중독이 돼버린 것이다.
‘하루점’ 에 중독된 나의 모습이 섬뜩하게 부각(浮刻)되는 날이 있었다. 나는 이 버릇을 딱 끊었다. 앞으로 나는 이 난(欄)은 절대로 안 볼 것이다…. 나이 40이 넘던 어느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이 약속을 지켜오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좀 더 근원적인 의문이 생긴다. 점을 치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인가? 내일을 이렇게 저렇게 예측하고, 다음 달 일을 걱정하고, 겨울철에 미리 대비해서 준비하는 일도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점’인데, 이것이 그리 비도덕적, 비윤리적인 행위일까? 동양에는 예부터 전해지는 『주역(周易)』이라는 점의 철학 책이 있다. 점을 치는 행위가 과연 나쁜 짓인가?
그럴 리가 없다. 내 생각으로는 점의 심리는, 넓게 생각해서 미래에 대한 굼굼증은 태고적부터 우리 마음 속에 깊이 각인(刻印)된 본능의 한 가닥이다. 이 신성한 본능의 도움 없이 어찌 우리 인류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았겠는가. 내가 신문의 ‘일일운세란’을 보는 것을 끊은 후 내게 이상한 새 버릇이 생긴 것은 발견했다. 길 가다가 작은 돌멩이가 있으면 딱 찬다. 돌멩이가 전신주에 명중하면 ‘아, 오늘은 재수가 좋겠구나!’ 이런 식이다. 점의 심리는 역시 본능적인 것이다.
큰 일을 맡은 사람일수록 미래에 대한 걱정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미래는 완벽한 비밀에 싸여 있는 스크린이다. 저기에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아니, 나는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하나? 이런 생각은 책임감이 강한 성격에서 오는 당연한 궁금증이다.
동양에는 ‘수인사 대천명 (修人事待天命)’ 이라는 매우 아름다운 말이 있다. 내가 할 바를 다 했으니,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결과야 어찌 들어나든 간에 감사할 따름이다.
정성이 극진하면 예상과 염원은 하나가 된다. 점을 치더라도 본인의 기복(祈福) 차원을 넘어서면 그것은 숭고한 행위가 된다. 이 목숨 바치겠사오니 왜적을 섬멸케 하여 주소서, 하고 간절히 비는 충무공의 염원과 게세마니에서 피땀 흘리시는 예수님의 기도에 일맥상통하는 바가 없다고 누가 단정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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