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죽음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이었습니다. 감기가 심해서 며칠 결석하던 친구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하얀 국화꽃다발과 선생님의 심각한 표정에서 죽음이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특별한 사건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가장 슬픈 죽음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고 입양되지도 못한 채 생명을 잃은 아이들의 그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의 죽음이 너무나 가여웠고 하느님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슬픔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은 작년 이맘때 있었던 그녀의 죽음입니다. 그녀는 여성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제가 쉼터여성들의 자활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진행할 때 참석했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려서 부모와 헤어져 할머니와 살았고 쉼터에 들어오기 전까지 힘겨운 생활을 했었습니다. 웃는 모습이 특히 예뻤던 그녀는 우울증을 치료하는 중에 쉼터에서 퇴소해 저를 비롯한 쉼터 선생님들 마음을 무겁게 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었는데 목소리만으로도 무척 힘겨워하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녀와의 마지막 통화를 한 바로 다음 날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며칠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한 채, 그녀를 떠나보냈다는 것이 가슴 깊은 곳에 고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 핸드폰에는 아직도 그녀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이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위령성월을 보내며 죽음으로 떠나보낸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만날 수 없지만 그것이 삶과 죽음으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 언젠가, 어디에선가 연결되어 있음을 믿으며 죽은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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