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를 해도 공정하신 분이 하느님이시다. 언제부터인가 내 기억에 들어와 있는 구절이다.
인간의 논리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러한 비논리, 초논리를 아득히 초탈하고 계신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은 믿음의 대상이지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하느님은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엄청나다 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존재이시다.
얼마 전 이 연재의 25번 째 글, ‘무엇이든 그 고비가 있다’에서 나는, 아무리 심한 고통도 그 고비만 넘으면 거기에서 해방되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 대체로 이러한 뜻의 글을 썼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그 다음이 문제다.
나와 늘 교류하며 나의 글을 꼼꼼히 읽어주는 Y여사가 나에게, 고통에서 벗어나도 즐거운 일이 생길 전망은 거의 없고, 갈수록 암담하기만 한 사람도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런 사람 앞에서 하느님의 공의로우심이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는 뜻으로 문제를 던져왔다. 간단히 말해서 자비로우신 하느님이 관여하시는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부조리한지 모르겠다는 물음이다.
문제를 단화해서 문제의 핵심을 좀 더 분명히 부각시켜보면, 왜 의인(義人)이 오히려 고통을 당하고 악인이 상을 받는가 하는 문제다. 여기에서 악인이 받는 상이란 잘 먹고 출세하는 현실적인 영달이지만, 어쨌든 이러한 사회적 부조리는 우리가 설명하기 어려운 난제(難題)다.
보통 사람에 지나지 않는 나도 이런 문제를 난제라고 느끼기만 할 뿐 뾰족한 설명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촉발의 동기가 되어 이것저것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 한두 가지 정리되는 것이 있어 그것을 적어볼까 한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 사회를 집단으로 다루시기를 좋아하신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사람들이 유태인 수용소에서 유태인을 다루기 위해 누군가 한 사람이 잘못을 하면 수용된 집단 전체를 처벌하는 규율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잔인하고 가혹하고 무서운 방법이다. 어떤 의인이 용감히 반발하고 싶어도 나 때문에 남이 받을 벌이 너무도 끔찍해서 차마 그렇게 못한다. 방법 치고는 묘한 효과를 노린 방법이다. 그런데 하느님도 이 방법을 선호하신다는 생각이 스친다.
예전에 전해들은 얘기다. 샌프란시스코의 어떤 수도원에 한 수사가 있었는데, 왜 수사가 되었느냐고 물으면, 자기 아버지가 마약밀수를 위시해서 너무도 많은 죄를 저질렀고, 그뿐만 아니라 자기 집안은 온통 범죄의 소굴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속죄하는 의미에서 자기 하나라도 하느님께 제물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 했다 한다. 죄는 아버지가 짓고 속죄는 아들이 대신 하는 셈이다.
암은 치료가 어려워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는데, 누가 암에 걸리고 누가 안 걸리고의 기준이 없다. 착한 이도 걸리고 악인도 천재도 미인도 누구나 걸 린 수 있다. 죄 많고 타락한 사회에 하느님이 무작위로, 집단으로 벌을 주시는 것 같다.
하느님이 한두 사람씩 골라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으로 처리해버리시는 실례는 많다. 소돔이 망할 때 하느님은 쉰 명부터 줄이고 줄여 의인 열 명만 있으면 소돔을 구할 것이라 하셨다. 만약 의인 열 명만 있었다면 이들의 공덕(功德)으로 소돔은 망하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그랬었더라면, 이런 경우는 어떤이의 죄로 딴 어떤 이가 대신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딴 어떤 이가 잘 해서 모두가 상을 나누어 갖는 경우가 된다. 어쨌든 간에 하느님이 집단적으로 일을 처리하신다는 점만은 같다.
죄송스럽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역설적인 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하느님은 왜 하필 의인을 골라 갈수록 더욱 어려운 고통을 주시는가? 그것은 그가 그 십자가를 감당 할 만한 그릇이 되어 오히려 뽑혀서 남을 대신하여 고통을 받는 경우가 아닐까. 어쨌거나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늘나라에 가보기 전에는 아무도 단정적인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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