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불 역사학자이자 서지학자인 박병선(루갈다) 박사가 23일 향년 83세로 선종했다. 박 박사의 프랑스 빈소에는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그의 이름 앞에 따라 붙는 ‘직지심경의 대모(代母)’, ‘외규장각 의궤 반환을 이끈 장본인’이라는 수식어는 박 박사가 일생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 대변해준다. 박 박사는 외국에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고 지켜온 선구자요, 수호자였다.
박 박사는 우리가 잃어버리고도 깨닫지 못한 우리의 역사를 한 구석에서 끄집어내고 먼지를 말끔히 털어내 우리 앞에 내놓았다. 박 박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 존재조차 몰랐을 일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웠다.
83년 평생을 혼자 살면서 연구와 집필에만 매달려온 박 박사. 무엇이 그를 이토록 미치게(?) 만들었을까.
사실 박 박사의 연구·집필은 몸서리치도록 외로운 작업이었다. 타지에 있는 여성 역사학자의 노력은 수십 년 동안 아무런 인정이나 지원을 받지 못했다. 1979년 외규장각 의궤를 발견했을 당시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도 쫓겨나다시피 했다. 비밀을 발설해 문제를 야기했다는 이유였다.
“역사자료를 하나둘 모으다보니 작은 집이 가득차더군요. 어렵사리 모은 자료를 버릴 수도 없어 계속 연구했던 것이지요.”
박 박사는 가톨릭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지나치리만큼 겸손했다. 어떠한 욕심이나 의도 없이 순수하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간 박 박사였다. 힘들 땐 그저 성모님께 의탁해 힘을 얻었다. 아침마다 오늘 하루를 주심에 감사 기도를 올렸다. 온전히 역사를 되살리는 데 매일을 보냈다.
이제 박 박사는 우리 곁에 없다. 박 박사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가 남긴 울림만은 마치 본 것과 같이 생생하다. 어떠한 시련에도 역사 앞에서만큼은 당당했던 박 박사. 이제 우리는 박 박사처럼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학자를 다시금 만날 수 있을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