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준비를 위해 제의실에 들어갔더니 복사 아이들이 웅성거리다 다를 보자 바로 묻는다.
『신부님, 하필이면 왜 우리는 부처님 오신 날에 본당의 날 행사를 합니까?』사정인 즉 이렇다. 성령을 주보로 모시고 있는 우리 본당은 해마다 성령강림일에 본당의 날 행사를 하는데, 공교롭게도 올해는 성령강림일이 부처님 오신 날과 겹쳐졌다. 그런데 제의실에는 교회에서 발간된 달력이 아닌, 세달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달력이 걸려 있다. 그 달력의 5월 19일에는 성령강림일 대신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적혀 있고, 그것을 본 아이들이 의아해서 나에게 물어본 것이다. 그 날은 성령강림일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본당의 날 행사를 한다는 설명을 하였지만 내 말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달력을 더 신뢰하는 눈치였다.
비단 우리 본당의 복사 아이들 뿐 아니라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스스로의 경험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 우선 그것에 의거하여 판단하낟. 그리고 자신들의 필요성이나 욕구의 만족에 유익하게 보이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므로 모든 가치의 판단에는 필연적으로 편견이 포함되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교회의 출판물들도 역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하면 출판물의 전체적인 요사는 항상 특정한 세계관과 관련이 있고, 사람들은 교회출판물이 신앙의 관점으로 형성되어 그리스도교적인 인간상을 제시해 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19세기 중엽 출판의 자유가 형성될 무렵 교회는 한 동안 사회적인 출판을 민중의 윤리를 파헤치고 파괴시키려는 선동 정치와 조작의 도구로 보았으며, 그에 따라 공식적으로 출판의 자유를 해로운 것으로 단죄하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사회적인 출판에 대응할 필요성이 존재하였으며 이것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교회의 출판사도직이 생겨났으며 교회 출판사와 교회 신문이 창립되었다.
이에 상응하게 교회의 모든 출판물들은 신앙과 긍정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신앙과 교회의 문제에 있어서의 공공연하고 비판적인 태도는 모든 논쟁을 정당화하지는 않으므로 교회 출판물들이 신앙과 긍정적인 관계를 가질 경우에 비로소 그것들은 교회에 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 출판물이 교회와 신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봉사할 수 있기 위해서 표현이 정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을 위한 잡지는 초등학생의 비판 능력이 아직 그다지 많이 발전하지 않았고 분명히 주장된 가치들만을 이해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반면 지식인들을 위한 신문은 독자들이 스스로 분석할 수 있도록 정보와 사례들을 제공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신앙 안에서 오늘날의 다원론적인 세상이 요구하는 독자성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교회 간행물은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하여야 한다. 만약 어느 사람이 자신의 신앙적인 삶에서 이러한 독자성을 찾지 못하고 교회의 가르침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하기만 한다면 그는 현대의 세계가 제시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도 그것을 제대로 다룰 수도 없게 된다. 그 외에도 그는 자신을 잘못 이끈 교회의 출판물에 대하여 불신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신뢰할 만하고 진지한 신문학은 순간의 분위기에 좌우되지 않고, 예기되는 발전을 염두에 두며 사람들을 현재의 사조에 대한 맹목적이고 무비판적인 애착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신중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따라서 교회의 출판물은 그리스도교적인 세계관 외에도 객관적인 보편타당성을 필요로 한다. 객관성이란 묘사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설혹 그 사람이 반대자라 할지라도, 부당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하며 보편타장성이란 어느 사건을 누군가가 기쁘고 즐거울 수 있도록 기술하는 것뿐 아니라 실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가 양해할 수 있도록 해야지 적개심을 키우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보수주의나 진보주의를 지향하는 교회의 출판물은 특히 주의하여야 하는데, 이것은 항상 당사자들이 서로 상대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도록 할 만큼의 적개심을 키우고 상대방의 관점을 부당하게 제한하고 틀리게 묘사한다.
인간은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에게만 관련되어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이기적인 관점으로만 해석해서는 안되며 다른 사람을 위한 진실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하고, 어느 것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에도 그것이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공동체의 욕구와의 관계도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출판물에 있어서도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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