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동숭동 대학로 세우아트센터에서 호스피스를 주제로 한 연극 ‘죽이는 수녀들 이야기’를 관람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 이 연극은 보는 내내 매우 안타깝고 아픈 마음을 갖게 했다. 극중에서 다뤄진 말기 암 환자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돈을 어떻게 쓰겠다는 목적 없이, 버는데 만 신경을 쓴 채, 돈을 삶의 제1의 가치로 생각하며 살아오다 결국 삶의 마지막 선고를 받으면서 후회와 통곡을 하고 용서를 청하는 모습이었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말기환자와 그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는 행위로, 환자가 남은 삶 동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맞이하도록 신체적, 정서적, 영적으로 돕고 사별 가족의 고통과 슬픔을 경감시키기 위한 총체적인 돌봄이다. 외국의 경우, 죽음을 앞둔 환자의 40% 정도가 호스피스 간호를 통해 인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고 한다.
실존철학자 하이데커는 “인간은 죽음에의 존재”라고 했다. 죽음은 삶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생을 받은 순간부터 9개월의 시간이 그 자체로 끝이 아닌 또 다른 삶을 위한 준비였고, 탄생과 더불어 계속 죽음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 존재이다. 생활의 수단이 편리하게 된 현대인의 삶 속에 죽음은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 같다. 옛날에는 죽음이 신체적 늙음과 같았으나, 현대에는 교통사고, 암환자, 에이즈 등으로 죽음은 나이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 연극을 보면서 느낀 것은 말기 환자들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 중요하게 보지 못하면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 중의 하나는 스스로에 대해 너무나도 모르면서 살고 있다는 것 자체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유일한 시간은 장례미사 때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죽음이 그저 무섭고 두렵기만 할 뿐이고, 가급적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죽음을 부인하거나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사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삶의 모습이다. “잔칫집에 가는 것 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좋다. 산 사람은 모름지기 죽는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전도서 7:2) 왜냐하면 결국 언젠가 일어날 사실에 대해 준비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자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혼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또한, 현재 삶은 다음 삶을 위한 또 하나의 준비 과정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바로 그것이 영혼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 땅에서 보내는 마지막 순간이 되겠지만, 그것이 우리 존재의 마지막 시간은 아닐 것이다. 삶의 끝이 아닌 영원한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날이 될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땅 위에는 우리가 차지할 영원한 도성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앞으로 올 도성을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히브리서 13:14)
영혼에 비교하면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눈 깜짝할 순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결과들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우리의 마지막 날을 준비하는 것이 매일의 일이 되어야 한다.”라고 알려준 매튜 핸리(Matthew Henry)의 말을 기억해야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던 우리는 지역사회 일원이고, 나아가 지구가족의 일원으로서 받을 것도 줄 것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한 사실을 죽음을 앞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에 깨닫거나 끝까지 깨닫지도 못해 그나마 죽이는 수녀님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마지막 날에 깨달아 용서나 화해를 청하는 환자를 이 연극을 통해 보면서 그러한 문제를 정말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는가? 가족도 돌보지 않는 욕심쟁이들, 나만 아는 이기주의자들, 창고에 무조건 쌓아 놓기만 하는 사람 등 무엇이 문제며,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 원인은 우리의 교육인가 사회 속의 탐욕적인 욕심이 문제인가?
이제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2012년 계획을 생각할 것이다. 교회 달력으로 새해가 시작된 대림절은 도착을 뜻하며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해마다 대림시기를 보내는 까닭은 우리의 진정한 기다림의 목적지를 깨닫고 그 본래의 순수한 나, 완전한 나를 찾아 길을 떠나는 데 있는 것이다. 이 길이 바로 마지막 날 준비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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