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에게 ‘인생이란 무엇이오?’ 하고 물으면 나는 ‘인생이란 지금 여기요!’ 하고 대답할 것이다. 여기와 지금의 조합(組合)은 단일회성(單一回性)이며, 절대 되풀이되지 않으므로 같은 곳에서 살더라도 어저께와 오늘은 절대 같은 인생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인생을 유년기, 소년기, 장년기, 노년기 등 단계적으로 구분하여 어느 시기가 제일 좋은 시기인가를 따져보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선별적 평가를 하는 것이 보통이며, 그리하여 누구나가 젊음의 한창때 청춘을 인생의 황금기라고 생각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청춘은 아름다워라』도 이러한 사정(事情)을 말하고 있다. 아니, 헤세보다도 청춘예찬의 대표자는 역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이다.
그러나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청춘’이라 한 로댕의 말에도 다분히 세속적인 행복의 기준이 밑에 깔려 있다. 여자(연애), 술, 모험, 힘, 꿈 따위를 좇는 데 있어서는 역시 시기적으로 청춘이 으뜸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미 말한 바대로 ‘지금’ ‘여기’는 단일회성이므로 서로 상대평가의 잣대가 아닌 절대평가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도 절대적으로 소중하고, 내일도 그렇고, 청춘도 귀중하고 노년도 비길 바 없어 좋은 시기다.
우리의 내부 곧 몸과 정신의 내부는 똑 같은 상태로 지속되지 않는다.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하게 조금씩 조금씩 쉬지 않고 변한다.
유치원에 다닐 때의 사진을 보면 80이 넘은 지금의 나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저것이 과연 나일까 싶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유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일관된 같은 모습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 유치원아는 나 일 수밖에 없고, 지금의 나는 저 유치원아가의 변모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시간 타고 흐르는 인생은 연속의 불연속, 불연속의 연속, 이런 장난 같은 표현이 진실인 것이다.
인생의 과정을 상상을 통해서 큰 그래프로 그려볼 때 유년과 노년은 좌우로 비슷한 대칭형을 이루고 있고, 그 한가운데에 청춘이 봉우리처럼 솟아 있는 모양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유년과 노년 사이에서 서로 무언가 비슷한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
그 공통점은 이러한 점이 아닌가 싶다. 유년도 노년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작거나 힘이 없어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한다. 어려서는 부모가 키워주어야 하고, 늙어서도 거동할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둘째 세상이 단화(單化)된 상태로 비친다. 복잡한 것은 따라갈 수가 없어 자연 멀어진다. 셋째 성(性)에의 관심이 거의 없을 정도로 희박하다. sexless, 이런 것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세상이 비길 바 없이 맑아져 보인다. 구질구질하지가 않다.
유년시절은 동화의, 마술의, 신화의 시기였다. 무엇 하나 재미있고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버스가 출발하면, 버스가 가는 것이 아니라 길가의 나무들이 소리 없이 미끄러져서 저리로 가고 저기에서 오는 것이었다. 속지 않으려고 아무리 눈을 부비고 봐도 그러하였다. 버스가 멈추면 나무들은 또 쓰윽 섰다. 그러한 유년시기가 너무도 빨리 갔다. 아니 날아가버렸다.
2년 전 나의 팔순잔치 때 나는 ‘80대를 나의 인생의 황금기가 되게 하겠다’고 선언해버렸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버렸다. 그러나 나는 무모하게 큰 소리 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잡념 없고 밝게 남은 날을 그렇게 열심히 살겠다는 마음가짐의 표현이었다. 나는 요새 젊어서는 맛보지 못했던 고요와 평화를 느끼며 하루하루 기쁘게 살아가고 있다. ‘인생은 3부 형식 ABA’… 추억의 금붕어가 헤엄친다. 슬픈 인생 즐겁다. 랄랄라. 랄랄라. 3부 형식 인생은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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