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가다. 경치가 너무 좋다. 멋지게 휘굽은 소나무 가지 끝에 엷은 구름이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잘못하다 미끄러져 저 시퍼런 호수에 빠지는 날에는 목숨을 잃는다.
해는 빛나고 사흘에 한 번 꼴로 비가 와서 농사는 풍년이다. 누런 벼가 미풍에 나부끼어 가볍게 율동하고 있다. 하늘과 땅이 하는 일에 대해서 절로 찬미하고픈 감정이 솟는다. 그리고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천지인(天地仁)이다!
그런데 바닷가 어느 어촌을 요새 흔히 듣는 ‘쓰나미’가 강타하여 일순에 사람 만 명이 사라졌고 집이고 무어고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그러나 바다는 무표정할 뿐이다. 이때 사람은 한숨 섞인 신음 소리와 더불어 천지불인(天地不仁)이다 하고 중얼거린다. 하늘과 땅은 긍정도 부정도 않는다. 그냥 무표정하다.
무표정한 하늘과 땅에 대하여 어떤 이는 인(仁)이라 하고 어떤 이는 불인(不仁)이라 외친다. 어느 쪽이 정답일까? 어떤 때는 인을, 어떤 때는 불인이라 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과 땅이 변덕스럽게 이랬다 저랬다 하나? 천지는 동시에 인이요 불인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아니, 더 알맞은 표현은, 천지는 그냥 무표정한 의미의 심연일 뿐이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그래도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사물(事物)은 말이 없는데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해석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해석이란 말도 쉬운 말은 아니다. 사전을 보니 ‘해석’에 대한 풀이는 ‘사물을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함’ 이렇게 돼 있다. 참으로 알기 쉬운 좋은 풀이다. 그런데 이 ‘해석’이란 말을 철학자가 쓰면 그 순간 이 말이 따라가기 힘든 어려운 말이 된다. ‘해석’이란 말에는 내가 어떤 사물을 어떤 생각(마음가짐)으로 어떤 자세로 대하느냐 하는 뜻도 포함돼 있다.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리며 어떤 일을 간청한다. 하느님은 어떤 것은 들어주시기도 하고 어떤 것은 안 들어주시기도 한다. 하느님 제가 이번에 꼭 당선이 되게 해주세요. 그런데 당선이 되기도 하지만, 낙선이 되기도 한다. 이 두 가지 경우에 우리는 또 어떻게 응답하는 것이 좋을까? 우리는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을 어떻게 또 해석하는 것이 마땅할까?
정답을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해 주신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l 데살 5, 16-18)
우리가 천주교 신자로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 이상의 지침과 가르침과 목표는 없을 것이다. 아니, 천주교 신자로서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데 이 지침대로만 한다면 그 사람은 가장 높은 경지에까지 오른 도인이다. 가장 빼어난 인간이다.
하느님께 간절히 애원하며 기도드렸는데 오히려 청하는 것과 정반대의 것을 주셨다. 하느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런 때야말로 우리는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하느님은 우리 요청에 대해 응답해주셨는데, 이 응답이 잘못된 것인가, 맞는 것인가? 하느님의 답은 오답도 아니고 정답도 아니다. 그냥 답일 뿐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응답을 오답이 되게 하는 것도 정답이 되게 하는 것도 오히려 우리에게 달려 있다. 자유의지에 의한 우리의 선택이 그것을 결정한다. 참으로 우리의 자유의지는 거룩하고 귀중한 것이다. 하느님의 응답에 순응하는 것이 힘드는 경우에도 ‘하느님, 제게 더욱 시련을 주시니, 하느님께선 저를 그만큼 사랑하십니다. 기쁘고 감사할 뿐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바다. 이렇게 할 때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응답이 정답으로 피어난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일을 무조건 믿는 이유는 우리의 척도(尺度)와 하느님의 척도가 처음부터 도저히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사에 기쁘고 감사하다고 느끼는 것이 하느님의 자비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유일한 길이며, 이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자유의지이다. 우리의 자유의지가 얼마나 소중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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