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소음의 시대다. 집 밖에서는 자동차와 진행 중인 공사 소음, 안에서는 TV와 컴퓨터 등의 소음 때문에 내면이 외치는 소리에 집중할 수 없다. 내 자신의 소리도 들을 수 없는데 하물며 타인의 소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피정’이라도 가면 노력이라도 하겠지만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가 않다.
사회적으로 불만과 비판, 불화가 잦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으니 나와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에만 현혹되어 공허한 외침만 반복할 뿐이다.
지난 16일 서울 논현동성당에서 열린 ‘에파타 시각장애인 합창단’ 제1회 정기연주회는 여러 의미에서 현대인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서로의 눈을 마주하고도 의심과 불신을 일삼는 비장애인들과 달리 에파타 합창단원들은 보지 않고도 서로를 믿고 화합한다. 얼마 전 한 유명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단원 간 불화가 불거진 일이 있다. 그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당연히 불협화음일 수밖에 없었다. 평가도 혹평 일색이었다.
반면 에파타 시각장애인 합창단은 서로를 볼 수 없음에도 믿고 의지하려고 노력했다. 보지도 않고 믿기 위해 그들은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타 단원들의 소리와 피아노 반주, 기억에 의존해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냈다. 물론 완벽한 화음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서로를 향한 믿음을 바탕으로 음악에 대한 열정을 쏟아내는 에파타 합창단의 가치는 이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쉬운 노래를 부르고 동정을 받으며 공연을 하고 싶지 않았다”고 밝힌 지휘자 유인곤(요셉) 씨와 단원들은 이번 공연에서 어려운 레퍼토리로 18개 곡을 선보였다. 창단 후 24년 동안 목말라 기다리던 첫 무대에서 모든 기량을 쏟아냈다. 청중들은 그들에게 박수로 화답했다. 동정심이 아닌 믿음을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해준 합창단원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박수였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참 그리스도인에게 보내는 존경의 박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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