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어느 성당에서나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 가운데 하나가 한 켠에서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는 신자들의 모습이다. ‘고해성사’를 보기 위한 이 줄은 비신자들에게는 묘한 이미지로 뇌를 자극하는 기제가 되기도 해왔다.
가톨릭교회에서는 고해성사를, 세례성사를 받은 이들이 세례 이후에 지은 죄를 고백해 하느님께 용서 받고, 하느님과 이웃, 교회 공동체와 화해하는 성사라고 가르친다.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을 떠나 살았던 삶에서 다시 하느님께로 되돌아가는 ‘회개’의 삶, 하느님과의 친교를 회복하는 ‘화해’의 삶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 고해성사에서 방점은 ‘화해’에 놓여 있다. 온갖 죄에 노출돼 있는 인간에게 하느님과 이웃,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길을 열어주는 게 바로 고해성사다. 따라서 고해성사는 인간을 구속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에게 진정으로 죄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맛보게 하는 성사이며, 다시금 새롭게 살아가는 힘과 용기를 얻게 하는 성사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인간이 저지른 죄가 고백 때문에, 보속으로 인해 사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하느님은 회개하는 사람의 마음을 보신다. 고백은 뉘우치는 마음의 한 가지 표현일 뿐이다. 이러한 논리적 귀결은 참으로 회개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또한 거짓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죄 때문에 아파해본 이라면 이를 이해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죄가 용서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지은 업보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 다음 생에도 갚지 못하면 다시 또 태어나 그 다음 생에서라도 갚아야 한다. 따라서 죄를 범한 인간이 하느님의 자비, 사랑과 은총을 가장 잘 체험할 수 있는 성사가 바로 고해성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러한 의미를 지닌 고해성사를 ‘통과의례’ 정도쯤으로만 여기는 흐름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런 현상이 횡행하는 대표적인 곳이 정치판이다. 국민의 혈세를 도둑질하고도 ‘대국민 고백성사’를 했다며 면죄부를 얻은 양 의기양양해하는 정치인 정도는 이제 식상하기까지 하다. 국민이 맡긴 곳간을 고스란히 다른 나라에 내주고도 하느님 앞에 떳떳하다고 밝히는 이들 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교언영색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나라 곳곳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고도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들먹이는 이들은 또 어떤가.
더 이상 고해성사를 할 일이 없어질 때야말로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할 때는 정직한, 참된 고해만이 세상을 살리고 궁극에는 자신을 살리는 길이다.
지금까지 하느님과 이웃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죄만을 고해했다면, 이제는 자연을 파괴하고 창조질서를 어지럽힌 죄에 대해서도 고해성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교회는 창조 질서와 관련해 이렇게 가르친다. “더 이상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자연 사랑을 분리해서 볼 수가 없다. … 나의 탐욕과 부주의로 자연을 함부로 파괴하는 것도 창조주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는 죄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실제로 오늘날 생태계의 파괴는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죄’이다.”
한 해를 보내며,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만큼의 고해거리를 안고 살아왔는지 돌아볼 일이다. 그것이 이웃과, 세상과, 전 우주와 화해하는 시발점이다.
※팁: 회개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이 선물은 하느님 은총을 받을 준비가 돼 있는, 그분 은총에 마음이 열려 있는 이들에게만 주어진다. 참된 회개를 하지 못하는 이는 참 생명도 누릴 수 없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