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과 비구니의 만남. 이야기의 설정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자전거를 탄 수녀님과 걸어가는 비구니. 그냥 모른척하고 지나칠 수 있지만 다시 돌아와 비구니를 뒷자리에 태워 함께 가는 모습. 호의를 마다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여유로운 미소. 그리고 매우 절제되고 함축적인 자막. 「사랑과 사람,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아마도 많은 이야기가 아름다운 화면 속에 녹아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방영된 SK텔레콤의 TV광고 이야기다. 이 광고를 보면서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말이 생각이 났다. 그는 『영국 광고계에 종사하는 극히 일부의 광고인이 참여한다면 새로운 생활양식을 창조할 수도 있고, 인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프란치스코 성인을 따르게도 할 수 있다』라며 광고의 영향력에 대해 설파한 적이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라면 가톨릭 신자는 대부분 잘 알고 있는 훌륭한 성인이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흠모하고 그의 생활을 따르려고 하는 수도자의 표상이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 중에도 광고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 가톨릭 광고인들이 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광고적으로 표현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고 쉽게 받아들일 것 같다.
더욱이 청소년들은 광고 그 자체를 좋아하고 모방하는 심리가 강하기 때문에, 광고인들 중 일부만이라고 노력한다면 보다 밝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성서의 광고적 표현」을 위해 가톨릭 광고인들이 동참한다면, 이 세상에 엄청나게 많은 성인들이 탄생해서 바티칸을 바쁘게 해드릴 것이란 유쾌한 상상을 해 본다.
현대사회에서 광고의 역할이 매우 크다. 먼저 광고가 지닌 긍정적인 기능을 살펴보면 소비자에게 상품정보를 전달해서 건전한 소비생활을 하게 만드는 기능 외에도, 대중매체에게 경제적 기반을 제공하고, 대중문화의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치며,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제공하여 생활의 활력과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주며, 기발한 언어를 발굴하여 국민들의 언어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광고에 대한 비판론도 많은데, 지나친 물질주의를 조장하고, 문화수준을 획일화시키며, 미풍양속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말장난이 지나쳐서 건전한 언어습관을 해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광고에 대해서는 옹호론과 비판론이 공존하나, 자본주의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사회제도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잘 만들어진 한 편의 광고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따뜻하게 하고 재미와 감동을 준다. 위의 「수녀님과 비구니」광고를 보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굳이 느낌을 말하자면, 다른 종교간의 접촉과 수용이 인간적인 만남과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나타내려고 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어떤 종교를 믿느냐 보다는 어떤 인간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루가 10, 25~37) 처럼, 종교와 이념과 구적을 초월한 진정한 인간애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해 보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까? 강도를 만난 사람의 진정한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바로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이며, 자신이 지닌 재능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사랑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방송위원회에서 광고심의를 하면서 느낀 것은, 광고주의 이익을 그대화하기 위해서 소비자를 이용하거나 우롱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저렇게 유능하고 머리 좋은 사람들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광고, 재미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을 미소짓게 하는 광고 대신에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을 서슴치 않고 사용하는 것을 본다. 이를테면 과대·허위광고는 말할 것도 없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성적표현, 언어의 유희에 가까운 신조어의 불필요한 외래어 사용, 어린이와 청소년들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폭력적인 표현을 고의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마음이 답답함을 느낀다.
광고계 종사자들, 특히 광고인들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광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광고를 만들 때 바로 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고, 세상의 소금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 제2, 제3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번호부터는 정만수 교수님, 백남해 신부님, 강인철 교수님, 류시찬 신부님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정만수 교수님은 1978년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언론학 석사, 미주리대에서 광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로 재직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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