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지 않았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일이 실제 벌어지면 놀라움과 반가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기자는 7년 전 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의 국내 번역 작품들을 찾아 읽던 중 「93년(Quatrevingt-treize)」을 접하게 됐다. 제목 「93년」은 프랑스 혁명이 최고조에 달했던 1793년을 뜻한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혁명의 와중에 소용돌이치는 교회와 성직자의 모습을 어느 역사 문헌보다 생생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위고는 그의 장례가 국장으로 치러질 만큼 프랑스에서는 절대적인 존경을 받는 작가로 추앙되지만 우리나라에는 흔히 「장발장」으로 널리 알려진 「레 미제라블」과 「파리의 노트르담」 정도만이 번역돼 왔다. 기자가 읽었던 「93년」은 거의 40년 전에 번역된 세로쓰기 편집으로 읽기도 불편할 뿐더러 고어체 번역이어서 문장의 이해도 어려웠다.
기자는 문학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작품들을 번역, 출간해 온 ‘열린책들’에 기대를 걸고 「93년」의 새 번역을 요청했다. 그때가 2008년 가을이다. 하지만 출판사 근무 경력이 있는 기자로서 책 한 권을 출간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오랜 시간이 필요한지 너무도 잘 알기에 ‘소망’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열린책들에서 최근 「93년」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놀랍고도 기쁘면서 이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마태오복음 7장 13~14절의 말씀이 생각났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책이 잘 팔리지 않아서 손해를 볼지라도 출판문화에 족적을 새기고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 명작을 남기는 일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주님 공현 대축일’에 그리스도인의 좁은 문과 넓은 문은 무엇인지 묵상하게 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