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에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숙 탁아소」엘 갔었다. 부모들이 월요일에 아이를 맡겼다가 토요일에 집으로 데려간다고 하였다. 아마도 아이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확실히 주입시키기 위하여 어릴 때부터 국가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리라.
여성을 육아의 번거로움에서 해방시켰다든지 사회보장 제도가 어떠하다든지 하는 말에 앞서, 가정의 따뜻함보다 또래들과의 집단 생활을 통하여 국가에 필요한 사람들 만들기 위한 장치인 것 같아 너무나 차갑고 비정하게 느껴졌다. 안내인을 따라 미리 준비된 첫 번째 방으로 들어갔다.
11월 말이라 몹시 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난방도 되지 않는 방에서 너댓살 짜리 아이 예닐곱 명이 「강사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또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차가운 방의 공기만큼이나 분위기는 딱딱하고 절도가 있었다. 어른들 20여명이 들어와 자신들의 위에 서서 구셩하는 것을 알면서도 한눈 팔지 않고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는 아이들이 한편 섬뜩하게 느껴졌다.
강사선생은 「똑」소리나게 답하는 아이들이 내내 자랑스러운 듯 목소리도 창창하게 수업을 하고 있었다. 잠깐 아주 잠깐사이 선생님의 설명이 그쳤을 때, 한 여자아이가 우리를 돌아보며 아주 나즈막한 소리로 『와! 어른들 많다』라고 탄성을 내 듯 속삭였다.
순간 찰나의 시간 동안 우리와 아이와 선생과 남과 북의 모든 아버지 어머니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은 하나였다. 사상도 원수도 전쟁도 배고픔도 삼팔선도 휴전선도 태극기도 인공기도 김정일도 김대중도 없이, 우리는 한 아이를 통하여 그냥 서로 사랑하는, 혹은 사랑을 하고 싶은데 눈치만 보는, 어쩌면 벌써 서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아름다운 찰나가 지나자 강사선생은 당혹하였고,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고, 아이는 탁아소의 맡겨진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지금도 그 아이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못내 잊을 수 없다.
북한의 식량 사정이 좀 나아지나 싶더니만 다시 형편없이 되어버렸다. 여러 보도나 자료를 보면, 존 파월 WFP(세계식량기구) 아시아지역 담당국장은 『지금 북한 식량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한 세대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라고 경고할 정도이다.
제임스 모리스 WEFP 사무총장도 『북한 주민 600만명이 심각한 식량, 의약품, 식수 부족사태에 직면해 있으며 국제사회의 원조없이는 수주일 내에 상황이 급속히 악화될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아이는 아이일 뿐이다. 그 어떤 것을 주입시켜도 아이 본해의 천진함을 밀어 낼 수는 없다. 아이를 아무리 통제하여도 자신의 숨은 감정은 드러내고야만다. 아이는 국경의 의미도 정치의 어려움도 분단의 이유도 모른다. 단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으면 너무나 배가 고프고, 엄마보다도 나라보다도 민족보다도 사랑보다도 밥이 더 좋다.
아이를 굶기면서 통일을 이야기해서는 안되고, 배가 고파 우는 아이를 두고 정치적 경제적 논리를 따져서도 안되고, 굶어서 기어다니지도 못하는 아이 앞에서 체제의 우월성을 부르짖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더러운 민족 전쟁의 의미와 그 책임을 따지기 위하여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 생각 있는 어른들이 할 일인가? 통일이 되었을 때 굶어 비비 말라비틀어진 아이들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너희 아버지 할머니가 미워서 쌀을 주지 않았다고 할 것인가?
나라에 물난리가 나서 큰 걱정이다. 혹자는 이런 큰 난리 때문에 나라 전체가 힘든데 북한 어린이가 지금 눈에 들어오느냐고 반문한다. 일면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난리를 당한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가지기 위해 수많은 좋은 분들이 나섰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으로 힘이 있는 사람은 힘으로, 돈과 힘을 모두 내어놓은 좋은 분들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참으로 반갑고 기쁜 일이다.
큰 난리 때마다 우리민족은 이렇게 하나가 되어 고통을 분담하고 역경을 이겨내었다. 우리민족의 저력이다. 이렇게 우리는 스스로 난리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고 의지가 있고 경제력이 있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기 위하여 애쓸 필요가 없다.
우리끼리 힘과 돈을 잘 나누고 고통에 동참하면 해결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북한은 혼자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그래서 요즘은 그 대단치도 않은 자존심을 꺾지 않는가. 힘없는 쪽이 숙이고 들어올 땐 받아 주는 것이 여유로운 쪽의 도리이다. 우리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도 잘 챙겨 나가면서 민족과 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북한의 아이들도 먹이자.
요즘 필자가 일하는 마산교구에서 특별히 「북녘어린이 살리기 모금 운동」을 하고 있어서 이렇게 몇자 적어 본다. 하느님의 사랑은 무한하고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어서 아무리 「철천지원수」라 하더라도 용서하신다. 우리 신앙인들이라도 아무리 미워보이는 북한이라 하더라도 아량을 베풀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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