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가톨릭출판사 일부 부서가 파주 프린팅파크로 이전했다. 필요 이상의 책임감으로 부대끼던 나는, 이를 계기로 ‘벌지 않고 쓰지 않는 생활’을 하리라며 사직서를 냈다. 프리랜서 일감이 상당해 전기세, 의료보험료 등의 공과금과 최소한의 생활비를 마련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호감을 갖고 있던 출판사로부터 와달라는 청도 몇 번 받았다.
하지만 가능한 한 일은 적게 맡았고, 와달라는 출판사에도 가지 않았다. 자유를 좀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간 글자들 속에 파묻혀 살았지만, 읽고 싶은 책보다는 읽어야 하는 책을 볼 수밖에 없어 늘 아쉬웠었다. 처음 느낀 홀가분함도 계속 유지되길 바랐다. 경비도 아끼고 운동도 할 겸 하루에 서너 시간씩 걸어 다녔다. 덕분에 살도 쏘옥 빠졌다. 이런 걸 금상첨화라 하던가?
물론 좋기만 한 건 아니다. 혼자 연명하는 데는 별 돈이 들지 않지만 누구와 만나면 제법 큰 경비가 들었다. ‘안 벌고 안 쓰기’ 위한 필요조건은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은거(隱居)’였다. 그리고 은거의 필요조건은 연락 두절이었다. 그렇게 2년여를 지내던 어느 날, 가톨릭출판사의 비서실로부터 ‘새로 오신 사장님이 통화하고 싶어 하시는데 도무지 연락이 되지 않으니, 연락 좀 해 달라’는 문자를 받았다.
망설임 끝에 가톨릭출판사로 돌아와 1년여를 지낸 지금, 다시 필요 이상의 의무감, 책임감에 눌리며 살이 찌고 자유 시간도 없어졌다. 이게 나의 한계다. 좋은 책들을 많이 만들어 ‘가톨릭출판사’라는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책들로 두툼한 도서목록을 만든 후, ‘중단’이 아닌 ‘마무리’로서 은퇴다운 은퇴를 하겠다는 재입사의 결심이, 결코 망상으로 끝나지 않길 오늘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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