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언어에서 가장 많이 저지르는 잘못은 「우리 나라」를 「저희 나라」로 표현하는 것이다. 저희라는 말은 「우리」의 낮춤말로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은 상대방에 대한 겸양의 표현이다.
개인간의 겸양은 동양문화권에서 특히 동방예의지국인 우리 나라에서 미덕이라 할 수 있지만, 나라와 나라사이에는 겸양의 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로 표현되어야 한다. 따라서 「저희 나라」라는 말은 속국이 종주국에 바치는 겸양의 표현이며, 사대주의적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방송에서 「저희 나라」라는 표현을 하루에도 여러 번 들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이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도 비교적 식자층이거나 여론선도층에 속하는 사람일진대 더더욱 이러한 표현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방송언어와 관련하여 또 다른 잘못은 지나치게 외래어 또는 외국어를 남용하는 것이다. 외국어와 외래어는 명확히 구분되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외국어는 우리말 이외에 외국에서 들어와 있는 다른 나라의 말이고, 외래어는 한자어 이외의 말로 외국어에서 빌려 마치 국어처럼 쓰이는 단어를 뜻한다. 어떤 말이 외국어냐 외래어냐에 대한 판단은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가람마다 지식의 수준이 다르고 종사하는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외국어가 한정적인 번위에서 쓰이다가 차츰 일반의 호응을 얻어 보편화되면 외래어가 되며, 이 때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현실적인 사용실태를 감안하여 널리 통용되는 외래어로 판단이 내려지면 비로소 국어의 일부인 외래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방송언어는 불특정다수인 국민 모두가 보고 듣기 때문에 국민의 언어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방송에서 특정 외국어를 일단 외래어로 받아들이면 이것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질 가능성이 높으므로 외국어의 사용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마치 쏟아진 물을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듯이, 한번 방송에서 사용한 외국어는 더 이상 외국어가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나라의 언어는 문화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며, 문화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래어는 국어의 어휘를 풍부하게 하는 긍정적인 측면과 고유어의 비중을 약화시키는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외래어에 대해 무조건 배척하는 태도는 옳지 않으며, 다만 고유어 또는 대체어가 있음엗 이를 버리고 외래어를 마구잡이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즉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방송에 외국어를 남용하는 사례가 많으며, 외국어의 무분멸한 사용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자국어의 순수성을 지키고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방송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외국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 방송출연자 가운데에는 적절하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바꾸어 표현하려는 노력을 포기한 채 외국어를 마구 남용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방송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방송광고, 홈쇼핑채널에서 더욱 심한 편이다.
방송에서 외국어를 사용하는 심리적 요인을 살펴보면, 우리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외국어를 섞어 쓰면 보다 전문적으로 보이고, 보다 멋있게 들리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점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방송이 지닌 문화적 속성이나 유행선도기능을 감안할 때, 가능하면 적절한 우리말로 바꾸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외국어로서 우리말에 적절한 대체어가 없을 때, 그리고 어느 정도 사회에서의 인지도를 획득하고 일반화되었을 때 방송에서도 외래어로 허용해야 할 것이다.
방송인들이나 출여낮들이 외국어를 즐겨 사용하는 경향에 대해 일반인들은 거부감을 가진다. 며칠 전 일간신문의 독자투고란에 한 홈쇼핑채널에서 인조토끼털 코트를 판매하면서 「인조」라는 말 대신에 「페이크(fake)」라는 말을 사용했으며, 「토끼」라는 말 대신에 「래빗(rabbit)」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고 지적하였다. 이밖에도 「진짜」대신에 「리얼(real)」을 쓰는 등 진행자의 말 가운데 상당수가 영어 단어였으며, 홈쇼핑 진행자들이 어설픈 영어를 써 가며 소비자를 우롱하는 처사는 없어져야 할 것으로 비판하였다.
조금만 노력하면 적합한 우리말을 찾아 쓸 수 있는 경우에도, 방송에서 별다른 노력없이 아니면 고의적으로 외구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좀 더 우리 말과 글을 아끼고 다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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