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저 심○○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남○○」이 죽었습니다…. 신부님께는 꼭 연락드리라고 해서 이렇게 전화드립니다. 근데 장례를 치르려니 돈이 좀 필요하네요…』
전화를 끊고나니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4년 전(93년도) 불쑥 찾아와서는 「출소증」을 내 밀고 구두통을 사달라 하던 거지 아닌 거지 「남○○」. 귀찮아서 이제 다시는 오지 않았으면 했지만 막상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영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로부터 한달쯤 후 성당에 앉아있는 「남○○」을 만났습니다.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반갑다고 하기도 그렇고 왜 살아왔냐고 하기는 더욱 그렇고…. 참으로 허탈했습니다.
말인즉슨, 자기하고 함께 다니는 「심○○」이 자기를 팔아서(죽여서?) 돈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빌어먹는 것도 여러 가지다 싶었습니다. 「남○○」은 아직도 한달에 한번 맡겨 놓은 돈 찾으러 오는 사람처럼 꼬박꼬박 성당에 옵니다.
사실 사제직을 수행하다 보면 많은 죽음을 지켜보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맞이하는 죽음, 수를 누릴 만큼 누렸다 싶은 죽음, 사고를 당해 졸지에 떠나는 죽음, 잠자리에 들었다가 편안하게 떠나는 죽음, 병으로 오랜시간 고통을 겪다가 맞이하는 죽음 등, 여러 모습의 죽음을 지켜보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보살핍니다.
몇 년 전, 새벽에 급한 연락을 받고 찾아간 아파트에는 한 한머니의 쓸쓸한 죽음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12평 작은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오신 할머니였습니다. 가느다란 숨을 놓을 듯 하시면서도 신부를 알아보고는 손을 꼭 쥐었습니다. 이미 희미해진 눈 속에는 80 평생을 살아온 모든 순간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회환과 눈물의 시간, 기쁘고 행복했던 모든 순간들이 조용히 전해졌습니다.
얼마간 말이 없던 할머니는 편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남은 자식이나 재산은 없었지만 할머니의 삶은 죽은 다음에 빛이 났습니다. 할머니로부터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던 모든 사람이 먼저 나서서 장례를 치르고 기도하며 슬퍼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였습니다.
꽤 부유하게 여겨지는 할아버징츼 죽음을 지켜 본 적이 있습니다. 젊은 날, 어떤 방탕을 즐겼는지 느껴질 것 같은 분이었습니다. 죽음을 지키며 둘러선 가족들은 별 말이 없고 그다지 슬퍼하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죽은 후에도 조문객은 많았으나 대부분 안면 때문에 찾았다 싶을 뿐이었습니다.
3년 전 봄 30대 후반의 여성이 교통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일이 있습니다. 제가 거제에서 일할 때 함께 노동 운동을 하였던 분입니다. 눈이 맑고 늘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젊은 날의 열정을 노동 문화 운동에 쏟아 부었던 분입니다. 거제의 노동자들은 아직도 그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혼인주례를 하였던 분이 신혼 여행지에서 사고로 죽는 바람에 장례 미사를 드린 일이 있습니다. 아주 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 「젊은 신부」(새댁)는 장례미사 내내 울었고 어떠한 위로의 말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군종으로 계시던 선배 신부님의 죽음이 생각납니다. 늦은 밤에 차를 운전하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제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때라 사람들은 무척 놀랐습니다.
특히 사회 참여에 각별한 관심이 있었고, 사람들을 끄는 카리스마 같은 것이 있던 분이었습니다. 시민운동을 오래한 분이라면 다 알만한 분인지라 가끔 지역 시민운동에 사람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면 그 선배 신부님의 이름을 떠올립니다.
여러 가지 죽음들을 지켜보고 떠나 보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람의 살고 죽음이 단순히 육체적인 것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었으나 살았으나 그 이름을 불렀을 때 따뜻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살아 있고 아무리 재물이 많다하더라도, 그 이름을 듣는 사람마다 얼굴을 찌푸리는 손사래를 친다면 그는 진정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미 세상을 떠나 우리 곁에 없지만, 그 이름을 불렀을 때 마음이 훈훈해진다면 그는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위령성월」을 지내면서 내 곁에 계시다가 떠나가신 분들을 한분 한분 떠 올려봅니다. 가슴을 따뜻하게 감싸는 일, 서운함과 미안함이 밀려와 후회스러운 일.
나의 죽음을 상상해 봅니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지금이든 죽은 후에든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따뜻하게 여길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매년 「위령성월」이 오고 또 지나갑니다. 그러나 올해는 조금 특별한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던 분부터 미워하던 분과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분들을 종이 위에 찬찬히 적어가며 기도하고 정리해봅시다. 그리하여 모두 살아서나 죽어서나 사람들의 가슴에 따뜻하게 남도록 해봅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