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위령성월인 11월도 다 지나가고 있다. 깊어가는 이 늦가을, 낙산 신학교 교정을 뒹구는 낙엽이 덧없이 지나가는 우리들 삶의 한 면을 깨우쳐 주려는 것 같다.
이해인 수녀님은 11월을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나뭇잎에 지는 세월/고향은 가까이 있고/나의 모습 더 없이/초라함을 깨달았네…』
수녀님도 가을 낙엽에서 영원한 고향으로 돌아갈 우리들의 초라한 모습을 떠올렸던 것 같다.
우리 민족의 올림픽 영웅 손기정 옹이 별세한 다음날 삼성의료원을 찾았다. 물론 시몬이라는 세례명을 지닌 어느 교우의 장례미사 때문이었지만. 그리고 가는 도중 교구 원로신부님의 부음을 들었다.
낙엽의 계절이다. 나무도 사람도 수녀님이 시에서 일깨워 주는 것처럼, 우리는 「매일 조금씩 죽음을 향해 살아가면서도 죽음을 잊고 있다가 누군가의 죽음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찬바람」이 일게된다.
죽음은 우리가 삶을 다 살때까지 기다려 주는 법이 없다. 죽음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얼마전 「위령의 날」에 성직자 묘지에서 강론하셨던 혜화동본당 주임 나원균 신부님의 마지막 말씀이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다.
『여러분이 죽음을 잊는다 해도 죽음은 여러분을 잊지 않습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음이란 모든 것을 끝장내는 것인가? 죽음은 마냥 슬프기만 하고 두려운 것인가? 죽음 건너편에는 그저 캄캄한 어둠만 있는 것인가?
그래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더 나은 것」일까? 수많은 사람들 발에 짓밟힌 낙엽처럼 갈갈이 찢긴 아픔만이 죽음 너머의 모습일까? 우리들 주변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 이야기도 심심지 않게 많다.
어둔 터널을 지났다든가 빛을 만났다든가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니 돌아가라는 소리를 들었다거나 등등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죽음은 이웃 마을이나 이웃나라를 다녀오듯 다녀올 수 있는 것일까?
일찍이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성경도 신학도 사후 생명에 관해 충분히 빛을 비춰주지 않는다』고 밝혔다.
분명 죽음 너머의 세계는 우리의 경험과 이성으로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신비의 세계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슬퍼한다.
죽음 너머의 세계가 미지의 세계인만큼 두려운 것은 당연하고, 이미 친숙한 사람들을 떠나는 일인만큼 슬픈 일이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이승의 개똥밭에 구르는 것만도 못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흔히들 사람들은 죽음을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왔던 곳을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無)에서 왔다고 믿는 사람들은 다시 무로 돌아가는 것이라 한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에는 사형선고를 받은 스승님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한 제자들이 피신하도록 당부하자 소크라테스가 「너희가 죽음을 아느냐」고, 「그리고 그 죽음 후의 세계가 그토록 해악중의 해악인 것이냐」고 되묻고는 「비록 죽음이 무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마치 꿈 한 번 바꾸지 않고 편안한 잠을 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횡재가 아니겠느냐」는 의견이 전해지고 있다.
사람의 출생이 하느님으로부터 왔다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시인 천상병님은 죽음을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노래한 것이 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날/가서, 아름다웟다고 말하리라…』
시인께서는 이 세상이 아름다웠다는 것을 보고 받을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을 하느님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해 알려주셨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비참하고 억울한 죽음에서 조차 욥처럼 희망한다.
『나의 살갗이 뭉그러져 이 살이 질크러진 후에라도 나는 하느님을 뵙오야 말리라. 나는 기어이 이 두 눈으로 뵙고야 말리라』(욥 19, 26~27).
과연 우리는 죽음을 알고 있는가?
지금까지 집필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부터는 조규만 신부, 강영옥 박사, 정만진씨, 나정원 교수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조규만 신부님은 1982년 가톨릭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로마 우르바노대학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현재 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로 재직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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