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화를 주러 온 줄 아느냐? 불을 주러 왔다”, “칼을 주러 왔다” 또는 “분열을 주러 왔다”는 주님의 말씀은 오랫동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지난 ‘제주 강정마을 사태’로 주님의 이 말씀을 나름대로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 말씀은, 불의 앞에서 눈감고 입 다물고 침묵하며, 마침내는 사람답게 살아야할 권리마저 포기한 채 살아가는 우리를 흔들어 깨우시는 외침이었다. 명백한 불의를 보면서도 졸고 있는 나의 의식을 일깨우시는 말씀이었다. ‘평화’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쟁취해야할 최상의 가치임을 일깨워 주시는 말씀이었다. 안중근(토마스) 의사가 왜 의인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주도는 세계생물보존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으로서 세계인이 경탄한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평화의 섬이다. 그런데 날벼락이 떨어졌다. 제주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1.2km의 한 덩어리인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고 그곳에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는 해군과 정부의 결정이 그것이다. 평화의 섬에다 전쟁을 대비한 군사기지를 건설한다니 기가막힐 노릇이다.
이것이 현실이 되면 강정마을과 제주도의 평화는 물론 우리의 염원인 평화적 남북통일은 완전히 물건너갈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한반도는 아시아의 안보와 평화질서가 깨지는 전쟁의 핵이 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불바다가 될 것이다. 도저히 묵과해서는 안 되는 엄청난 악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전쟁 가능성 1%만 있어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악의 공사인 것이다. 막아야 한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우리 수녀들은 1월 10일 오후 2시30분 쯤 해군기지 건설 정문 앞에서 기도드렸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은 이 상황에서 주님께서 친히 기적을 일으키시어 공사를 중지시켜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53배를 올리고 연이어 묵주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것이 업무방해죄가 돼 형사들이 수녀 18명, 신부 1명과 여성 2명을 체포, 서귀포경찰서로 강제 연행, 강력수사과로 넘겼다. 같은 날, 양윤모 교수 외 8명이 동부경찰서로 연행되는 사고도 있었다.
11일 새벽 12시가 되자 갑자기 많은 형사들이 들어와서 강압적으로 여성 2명을 수녀들과 분리, 동부경찰서로 연행해 가는 과정에서 묵주가 바닥에 떨어지고 베일이 벗겨진 수녀도 있었다. 죄가 없으니 석방된 것은 당연지사지만 감사로운 것은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에서 공개적·공식적으로 해군기지 공사에 대한 정부와 해군의 부당함을 천명하고 나선 일이다. 강정마을 주민과 그들을 보시는 창조주의 아픈 마음이 위로 받으시는 듯했다. 주님의 황금갑옷을 입고 정의의 깃발을 높이 들어 올린 사도들의 행진을 보는 듯해서 감사할 따름이다.
주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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