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설 즈음이면 감사와 회한이 섞인 마음으로 특히 할머니를 기억한다.
선친이 몇 대째 독자였던 우리 집은 ‘손(孫) 귀한’ 집안이었다. 자손을 애타게 기다렸던 할머니는 맏손녀인 나를 완전히 자신의 딸로 삼으셨다. 할머니와 함께 외출하면 사람들은 모녀지간이냐고 묻곤 했다.
만 다섯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를 할머니는 2년간 날마다 업어서 등하교를 시켰다. 양친이 엄연히 계셨건만, 학교 행사에도 꼭 할머니가 참석하셨다. 도시에서 상급학교를 다닐 때도 할머니가 줄곧 보살펴 주셨다. 대학 졸업 때까지 밥, 빨래, 청소 등 모든 일을 할머니가 해 주셨고 내게는 다만 공부만 하라셨다. 부끄럽지만 그때는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할머니가 잠시 시골집에 가신 어느 날, 이웃 아주머니가 물었다. “할머니가 안 계시니까 힘들지?” 그날 나는 할머니의 마음에 비수가 될 말을 생각 없이 지껄였다. “할머니가 안 계셔도 불편하고요, 계셔도 불편해요!” 할머니의 헌신적 사랑으로 살아가면서도, 할머니의 사랑 어린 걱정을 한마디도 듣고 싶지 않았던 나는 한편 할머니를 불편해 했던 것이다.
사실, 어른들이 하는 사랑의 타이름이나 걱정이 아이들에게는 그저 듣기 싫은 잔소리일 뿐이다. 그로 인해 부모와 자녀 간에 갈등이 생기고 불행해 하기도 한다.
할머니께 큰 불효의 말을 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 할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추억하던 나는 몇 년 전 마크 젤먼의 책 <언젠가는 고마워할 거야>를 발견하고 무척 기뻤다. 부모와 자녀, 조부모와 손자녀 간을 가로막는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데 이 책이 큰 도움이 되리라 여겨 서둘러 계약했다. 비록 늑장 부려 세상에 나왔지만, 세대 간의 이해와 소통으로 행복해지길 바라며 모두에게 한 권씩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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