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4~17일 한일 여자수도회의 대표들은 일본에서 양국간 역사의 진실을 밝힘으로써 정의와 평화를 이룩하고 공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키 위해 2차 회의를 가졌다. 일행은 필자를 포함 여자수도회 장상연 회장 엄서옥 수녀 부회장 우소영 수녀등 5명이다.
지난해 8월 한국에서 열렸던 1차 모임에 이어 일본 장상연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이번 만남에서 우리들은 조국을 빼앗기고 강제로 끌려간 우리 동포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오사카 교토 히로시마 등지를 둘러볼 수 있었다.
한국 일본의 역사가 얽혀 있는 여러 곳들을 방문하면서 고난 속에 소외되고 억울한 삶을 살다 간 동포들의 한 맺힌 소리를 듣는 듯했다.
마치「왜 이제야 찾아 왔느냐」고 하는 듯한 원혼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죄송하고 쓰라린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방문 일정 중 참을 수 없는 울분을 느꼈던 순간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찾았을 때였다. 30여 종의 기념관과 위령비들이 아름답게 세워져 있는 그 곳은 참배자들로 하여금 전쟁이 얼마나 큰 악이고 죄인지, 원폭이 얼마나 무서운 힘을 지녔는지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원폭 투하 당시 히로시마에는 20만 명이 살고 있었는데 그 중 2만 명이 조선에서 강제 징집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일행들을 통곡하게 만든 것은 평화기념공원 어느 곳에서도 조선인들의 피해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민단과 한국 정부에 의해 겨우 만들어졌다는 조선인 원폭 사망자 위령비는 공원 바깥 외진 곳에 세워져 있었다.
처절하게 천대 받은 한국인들! 지금까지 우리 민족은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정부는 도대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당당하고 떳떳치 못한 한일 외교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정말 괴로웠다. 그리고 외면 당한 원폭 희생자들의 한이 깊이 전달되는 것 같아 주저앉아 소리없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생존해 있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의 어려움을 엄 젬마 할머니로부터 들으면서 그분들의 소외감과 질책의 소리가 느껴져 무척 가슴이 아팠다.
우리 교회의 소명은 이렇게 소외되고 고통 당하고 짓밟힌 인권을 회복해 주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체험케 하는 일인데 우리는 너무나 소홀히 해 왔고 모르는 척 했다는 죄책감과 더불어 이 「힘없는 자들」편에 꿋꿋이 서리라는 결의를 새롭게 했다.
우리는 한편 조선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긴 일본 정부의 불의함에 저항하고 특히 일본군 위안부 원폭 피해자 보상과 치료의 권리를 찾아 주려는 양식 있는 선한 일본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그 같은 사실은 의인 열 사람만 있다면 세상은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하느님 나라가 되리라는 희망을 갖게 해 주었다.
일본 도착 첫날 찾았던 경도 고류사 대웅전의 홍송(호남에만 있는 적색 소나무)으로 만들어진 미륵보살이 일본 국보 1호라는데 이것이 백제에서 전수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 문화가 그토록 찬란하고 우리 민족이 그토록 뛰어난데 왜 우리는 외래 문화를 쫓는 데 숨 가쁜가? 역사가도 아니고 고고학자도 아닌 내 소견에는 일본은 우리 문화를 잘 흡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여자수도회 대표들과의 만남은 역사의 현실뿐 아니라 서로의 감정까지라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공감대를 이루었다는 느낌이다. 한일간 올바른 관계를 맺고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회 내 각계 구성원들 간에도 이런 만남이 자주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그러한 노력들이 한일 양국민의 바른 역사 의식과 평화 조성에 작은 씨앗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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