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일부터 6월 1일까지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열린 성체대회는 2천년 대희년을 앞두고 그동안 남용되어 온 자유를 반성하고 성체 안에서의 참된 자유를 묵상하는 자리였다. 더욱이 동구권 자유화의 발원지인 폴란드에서「성체와 자유」를 주제로 열렸다는 점에서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 이번 성체대회의 의미와 성과를 두 번에 나눠 취재기로 엮는다.
낮게 드리운 그림, 그 아래 드넓게 펼쳐진 평원, 잘 정리된 경작지들, 원색보다는 고풍스런 회색 빛이 어울리는 시가지…. 폴란드는 평화로웠고 기대한 대로 사람들은 친절하고 다정했다.
제 46차 세계성체대회가 열린 폴란드 제4의 도시 브로츠와프는 예술과 문화의 도시로 유명한 크라코프 만큼이나 고색이 서려 있다. 20년 이상 은 족히 됨직한 낡은 자동차들, 거기 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도로를 달리는 전차가 주위의 큼직큼직한 건물들과 함께 인상적이다.
브로츠와프 거리에는 별로 원색이 보이질 않는다. 전통은 있어 보이지만 조금은 우중충한 육중한 건물들이 그렇고 간판이나 사람들의 옷차림에서도 원색의 발랄함은 별로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여유가 엿보인다.
서울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숨막히는 넥타이들의 종종걸음보다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관광객들처럼 시민들은 여유롭게 서서 버스를, 전차를 기다리고 있다. 전차 타는 방법을 묻는 순례자들에게 거의 30분 동안 지도를 펼쳐 보이며 설명하는 한 폴란드 아주머니에게서 우리는 넉넉한 여유를 볼 수 있었다.
폴란드의 첫 인상은 이렇게 여유와 소박한 친절이었다.
하지만 이런 여유로움 한편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활력을 눈썰미 있는 외국인은 눈치 챌 수 있다. 우선 거리 자체가 변화했다. 브로츠와프의 구 시가 중심인 스비드니카에서부터 북쪽으로 오드라강까지의 거리를 포함한 전체 시가지가 1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말쑥해졌다. 물도 제대로 빠지지 않아 투숙객들을 곤혹스럽게 만들던 호텔 화장실들이 전면 보수되어 채 시멘트 냄새도 가시지 않았고 각종 문화 행사가 열리는 극장과 오페라홀들이 새로 단장됐다.
젊은이들은 항상 변화의 주역이다. 젊은이들은 폴란드에서 영어가 통하는 유일한 세대이다. 아직은 국제화라는 것이 폴란드에서는 낯선 개념인 듯 하다. 일류호텔에서도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대학가를 찾으면 더듬거리나마 영어로 말할 수 있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 영어 학원이 군데군데 있는 것을 보면 학생들은 매우 열심히 영어를 배우는 듯하다.
폴란드의 활력은 무엇보다 시장경제로의 변혁 후 초기의 극심한 혼란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안정된 성장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기인한다. 민주화된 25개 동구 및 구 소련 국가 중 폴란드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의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돕기 위해 설립된 EBRD(유럽부흥개발은행)는 지난 95년 발표한「체제 변환 보고서」에서 폴란드는 연평균 6% 이상의 국내 총생산 증가율을 보이며 안정적인 성장을 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제 서방 자본의 유입은 경제 개발을 가속화할 것이고 급속한 개방으로 우려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수십 번의 외침과 혼란 속에서 살아 온 폴란드는 그들의 전통적인 저력으로 다시금 일어설 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다.
한국도 폴란드의 경제 개발에 한 몫 하고 있다. 특히 대우는 2개의 자동차 공장을 현지에 갖고 있고 99년 말에는 바르샤바에 40층 규모의 대우 해외 본사 빌딩이 들어설 예정이다.
브로츠와프 시내에도 대우 자동차 영업소가 있고 전차 옆구리에는 DAEWOO라는 이름이 크게 붙어 거리를 달린다.
공산 통치로부터 자유를 획득한 폴란드는 이제 빈곤과 혼란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 뛰고 있다. 폴란드인들에게「자유」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89년 폴란드에서 시작된 자유의 함성은 이내 동구와 구소련으로 메아리쳤다.
폴란드는 이미 수없는 억압과 자유의 되풀이를 경험한 바 있다. 유럽의 정중심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폴란드는 엄청난 외침을 받았다. 가까이는 1차대전 후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분할 통치로 다시 세계 지도에 나타날 때까지 1백23년간을 국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1945년 1월 17일 유럽 대륙에 포성이 멎기까지 약 6백만 명의 폴란드인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공산주의의 침입, 폴란드는 또 한 번 자유를 위한 투쟁이 불가피했다.
인구의 95%를 차지하는 가톨릭 신앙은 자유를 향한 싸움을 승리로 이끈 이들의 저력이었다. 알렉산더 크바스니에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5월 31일 여섯 번째로 고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맞으면서『교황과 가톨릭교회가 없었다면 폴란드의 변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들에게 가톨릭 신앙은 곧 자유의 근원적인 힘의 원천이었다.
제46차 세계성체대회의 주제는「성체와 자유」였다. 공산권 민주화의 발원지인 폴란드에서 자유를 주제로 성체대회가 열린 것은 매우 절묘한 섭리인 듯하다. 어렵게 얻은 자유를 구가하는 폴란드인들에게 이번 대회는 또 다른 자유를 촉구한다. 「성체성사의 신비 안에서의 자유」가 그것이다.
시장 경제로의 전환은 경제 성장과 발전이라는 외피 아래 천민 자본주의의 유입과 세속화의 부작용을 동반한다. 이는 이미 다른 동구 여러 나라에서도 우려하고 있는 현상이다. 세계성체대회 위원장 가뇽 추기경은『뿌리 깊은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에서도 세속주의, 쾌락주의, 물질주의 현상이 보인다』며 이에 대해 경계할 것을 요청했다. 어쩌면 폴란드 국민들에게 이는 총칼을 앞세운 억압보다도 오히려 더 위험한「자유에의 위협」이 아닌가 싶다.
죄와 죽음으로부터의「참된 자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하며 성체성사의 신비를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번 성체대회의 메시지는 그래서 폴란드인들에게 더욱 절실하다. 그리고 나아가 이것은 폴란드가 이번 성체대회를 통해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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