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신부 생활을 마치고 주임신부로 발령이 날 즈음, 과연 어느 본당, 어떤 신자들을 만날까? 하는 기대감과 흥분에 휩싸이게 된다.
사실 그동안 보좌신부의 삶이란 자기에게 맡겨진 양떼를 돌보는 목자라기 보다는 주임신부를 도와 가며 사목을 배우는, 협조자였기에 이제 직접 사목해야 할 신자들을 만난다는 것은 첫사랑을 꿈꾸는 사춘기 소년처럼 가슴 들뜨게 만든다.
주임신부로 부임하면, 신자들 한 사람 한 사람,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까지도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움을 느끼고 마치 이리저리 전셋집을 전전긍긍하다 자기 집을 만난 것처럼 비록 다 쓰러져 가는 공소 강당에 널빤지로 이어 놓은 사무실일지라도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그러나 갓 시집살이 면한 새댁처럼 가슴 벅차오르는 환희와 불타오르는 열정은 가득하지만 첫경험에서 오는 불안함과 모든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생각은 우유부단함의 장벽을 만나게 하고 불확실한 결정에 자신감을 잃게 되기도 한다.
어느 때는 차라리 책임이 없었던 보좌생활이 그리울 때가 생기기도 하고 시집살이가 오히려 마음 편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시집살이 하다 살림을 나고 며느리를 보면 시어머니를 이해하게 된다는 말처럼 첫본당을 지내야 주임신부의 심정을 어느 정도 헤아릴 줄 아는 포용력이 생기는 듯 싶다.
어찌 되었건 눈치 보는 시집살이 보다는 살림을 따로 꾸려 나가는 삶이 자유롭고 재미있는 것도 사실이다. 부활대축일, 전 신자가 함께 모여 소머리 국밥에 소주 한 잔 나누는 그 흐뭇한 정도 보좌신부 때는 느낄 수 없는 맛인 듯 싶다.
성전 건축을 위해 커다란 성당에서 세련된 신자들에게 도움을 청할 때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서럽고 가슴 아팠지만 쓰러져 가는 강당 처마 끝에 서서 비를 맞아 가며 주임신부를 기다리는 신자들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 나의 신자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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