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여성주의: 뿌리와 가지-희망의 표징들」이라는 주제로 6월 4-14일에 인도에서 개최되는 제11차 아모르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긴 여행 끝에 인도 남부 도시 뱅갈로에 도착했다. 회의 장소는 인도교회의 활발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성서, 교리 및 전례센터」로 뱅갈로교구 뿐 아니라 인도 전체 교회를 위해 다양한 연구, 출판, 교육을 담당해 실시하는 곳이어서 아모르 회의 장소로는 적격이라고 생각됐다.
6월 4일 오후에 인도 문화의 향취를 흠뻑 맛보게 하는 환영 예식으로 회의는 시작되었다. 코코낫 잎을 자르고 접어서 길게 늘어뜨려 길 양편을 장식하고, 길 위에는 곱게 꽃을 그려놓아 축제 분위기를 북돋우고 각 사람의 이마에 붉은 점을 찍어 주어서 인도인들의 섬세한 환영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어진 개막 축제에서는 창조계의 조화로움, 파괴 및 회복을 인도의 다양한 춤으로 표현하여 「생태 여성주의」의 주제에 첫 순간부터 쉽게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었다. 개막미사(뱅갈로교구장 주례)는 인도인 모습의 예수님 성화, 인도식 제의, 촛불 대신 여러 층으로 불을 켤 수 있는 등잔불, 인도식 축복 예절, 인도 가락의 성가 등 너무도 잘 토착화된 미사 예절이어서 부럽기까지 했다.
이어서 회의에 기대하는 바에 대하여 그룹 대화를 나눈 후, 삶의 현장에서 불 「생태 여성주의」의 영성을 찾기 위하여 이틀간의 현장 체험을 떠났다. 현장 체험을 통해 소수의 부유층과 대다수의 빈민 사이의 극심한 빈부 격차, 카스트 제도의 최 하층민(dalit)들의 상상할 수 없는 고통, 도시 빈민, 결혼 지참금 등 수많은 형태의 억압에 시달리는 여성들, 가난과 문맹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농민, 광부, 채석장의 노동자들, 집 없이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가슴이 저려 오는 아픔을 느꼈다. 그러나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이들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면서 그들에게 힘이 되어 주려고 온힘을 다하고 있는 수도자, 교우들 안에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희망을 가지게 해 주었다. 「생태 여성주의」에 대해 더 잘 알고, 이 정신을 살고 있는 현장을 보면서 우리 가톨릭 여성들의 사명을 찾아 보자는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는 체험이었다.
현장 체험 후에 이어진 주제 강연들은 자연과 우리 인간이 한 근원에서 났고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확신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산업 자본주의식 개발이 선진화하는 세계화의 신식민주의적 위험성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과거에 유럽 강대국의 식민지로서 약탈 당했었고 현대에는 따라잡기씩 개발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인도에서 자연과 인간 생명의 파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들으면서, 오늘날 자연 파괴와 환경오염의 상태에 이르게 된 우리나라가 밟아 온 과정을 눈 앞에 보는 듯 했다.
오늘날 지구는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무자비한 착취 때문에 신음하고 있으며, 이 지구를 살리기 위해 생명의 비젼을 제시하는 삶의 양식, 생명신학으로서의 「생태 여성주의」영성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생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지구와 그 안의 모든 것들은 거룩하다. 그러므로 물질 만능주의의 가치관을 전파하는 자본주의적 개발에 대응해 인간의 생명과 생태계의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거룩하게 여기며,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그 거룩한 생명들을 담고 있는 지구는 하느님의 몸인 양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니 어느 누구의 소유도, 지배 착취의 대상도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상호 의존-연결의 관계(지배-종속의 관계가 아니라)를 수립해야 한다. 「생태 여성주의」의 영성은 죽음과 파괴에 대항하여 생명 보호를, 소비주의를 거슬러 보존 정신을, 탐욕을 거슬러 필수적인 것을, 지배-착취의 힘의 논리를 거슬러 상대방에게 힘을 주는 자세를, 끝없이 요구하는 태도에 반해 어느 정도 선에서 충분하다고 할 줄 아는 자세를, 자연 착취를 거슬러 창조계의 온전성을, 창조계와 우리 자신 안에서 혼돈과 질서를 동시에 포용하는 자세를 계속 추구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들을 성장시키는 생활양식을 모색해 나가야 하는 우리들의 사명이 뚜렷이 드러났다.
강연을 통해 주제를 심화함과 동시에 각 나라의 문화의 특성을 살려 준비한 매일의 아침기도와 미사에서 다양한 양식으로 「생태 여성주의」의 정신을 되새기고 기도화 할 수 있어서 아주 풍요로웠다. 참가국들의 문화를 소개하는 문화의 밤에는 아시아 문화의 다양성과 풍요성, 그 무한한 잠재력을 감지하면서 이 문화들이 개발의 물결에 밀려 파괴되지 않고 잘 보존되도록 온 힘을 다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주최국인 인도에서는 5개 수도회의 수련자 50여 명으로 구성된 거리극단을 만들어 춤과 노래, 대사를 통해 「생태 여성주의」의 주제를 총 요약해 주었다. 소속이 다른 수련자들이 모여 이러한 작품을 이루었음을 보면서 수도회들간의 긴밀한 협조와 연대 관계를 볼 수 있어서 흐뭇하였다. 이렇게 다양한 순간들에 참여하면서 이런 모임을 25년 전에 시작해 교회와 시대적 필요에 응답하고자 하는 의지 안에 하나 되어 함께 고민하고 성찰하며 실천 방안을 모색했던 수녀님들의 예언자적 안목과 용기에 감탄하며 그분들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25주년을 경축했다.
마지막 날에는 그동안 성찰한 내용을 모아 성명서를 작성하면서 「생태 여성주의」의 정신을 생활화 하기로 다짐했다. 이 회의를 통해 크나큰 일을 하신 하느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이 정신이 아시아 전역에, 우리 한국 땅에 널리 펼 수 있게 도와 주시라고 기도하며 폐회미사를 드렸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 글은 손인숙, 크리스틴, 율리안나, 이영자, 정애숙, 이정숙, 김영애, 최주영 수녀, 윤순녀 등 9명 참가단이 공동으로 작성한 글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