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 대희년을 준비하는「새로운 대림시기」의 마지막 대회답게 이번 브로츠와프 세계성체대회가 역점을 둔 또 하나의 측면은 바로 교회 일치 운동을 촉진하는 것이었다. 이번 대회의 교회 일치적 특징은 30일 오후에 열린 7개 언어 그룹별 세미나와 강의가 모두 교회 일치를 주제로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이튿날 저녁에는 교황님 주재 하에「루도바 홀」에서 세계 각국 신자들이 다른 그리스도교회 대표들과 유태교 및 회교 대표들과 함께 교회 일치 기도 모임을 가진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일종의 말씀의 전례로 거행된 이 기도 모임에서는 교황님께서 그리스도 교회들간의 「관용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서로 용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서 알아 보기 쉬운 일치의 표지를, 공동의 증거를 기다리십니다.」라고 역설하시던 교황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날 늦은 오전 비 내리는 쌀쌀한 날씨에 브로츠와프에 도착하시자마자 꽉 짜여진 일정을 강행군 하신 탓인지 교황님께서는 연설 도중 갑자기 재채기를 하셨다. 연설이 잠깐 중단되고 교황님께서는 미안하다고 하시고 연설을 계속하셨는데, 곧 이어 두 번째 재채기를 하시게 되었다. 갑자기 장내가 숙연해졌다. 이어 신자들이 교황님께서 감기에 걸리시지 않도록 기원하는 뜻에서「건강하세요」라고 외치며 박수를 보내자 교황님께서는「재채기도 교회 일치적 뜻이 있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화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라고 재치 있게 웃음을 참으시며 말씀하셨다. 장내에 폭소가 터져 나온 것은 물론이다. 교황님의 임기응변과 유머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이번 세계성체대회도 마지막 날인 6월 1일 브로츠와프 호텔 뒤편 광장에서 거행된 장엄미사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90여 개국에서 참가한 50만 신자들이 전날부터 내린 비 때문에 질퍽질퍽한 풀밭에 서서 아직도 간간이 내리던 비를 맞으면서도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로 교황님과 함께 거행한 장엄미사, 그것은 한 마디로 온 세상에「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하기 위한 횃불을 밝혀 주는 성찬의 심장이요 은총의 샘이었다.
성체와 기아 및 자유를 연결 지어 하신 교황님의 강론은 참으로 모든 이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유례 없는 발전을 이룩한 시대에, 기술과 제도 발전을 이룩한 시대에, 기아의 비극은 중대한 도전이요 고발입니다. 지구는 모든 사람을 먹여 살릴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20세기가 막을 내리는 오늘 날 수 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는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여기 진지하게 전 세계적으로 양심 성찰을, 사회 정의에 대한, 인간들간의 기초적인 연대의식에 대한 양심 성찰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어 교황님께서는 기아의 비극과 이번 대회 기간 중 폭 넓게 다루어진 주제인 자유를 연결 지어 말씀하셨다. 교황님께서는「당신께서는 저희에게 성체를 선물로 남겨 주시어 내적 자유의 질서를 다시 잡게 하셨나이다」라는 이번「성체대회 노래」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현대의 폴란드 사회에 대해,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한 민주주의 개념에 대해 자유의 복음, 도덕 질서의, 가치들의 영역에서의 질서의, 진리와 선의 질서의 복음을 제시하셨다.
「가치들의 영역이 비어 있게 되면, 혼돈과 혼란이 지배하게 되면, 자유는 죽어버리고 인간은 자유에서 노예상태로 전락하여 본능과 정욕과 거짓 가치들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참된 자유는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기꺼이 봉사하려는 자세와 자신을 내어 줌에 의해서 가려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우리에게 이 자유의 성찬적 학교에 들어올 것을, 그리하여 신앙의 눈으로 성체를 바라보며 자유의 새로운 복음적 질서를 건설하는 사람들이 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라고 역설하시며 교황님께서 강론을 끝내시자 신자들은 힘찬 박수로 화답하였다.
장엄미사를 마치고 신자들을 축복하신 다음 교황님께서 비도 여기 모인 신자들을 이길 수 없었다고 말씀하시자, 신자들은 일제히「교황 만세」를 외쳐댔다. 그러자 교황님께서 응답하셨다. 「저는 아직 건강합니다. 일흔 일곱 살 입니다」. 참으로 감격적인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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