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지칠 줄 모르는 최고 목자로서의 열정은 장엄미사 후 대신학교에서 열린 각국 대표단장들과의 만남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브로츠와프 주교좌 성당에서 세상을 떠난 그 곳 전임 대교구장과 주교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5백m 남짓 떨어져 있는 대신학교까지 걸어 오시느라 예정보다 한 시간 이상이나 늦게 도착하신 교황님께서는 참석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이들을 격려해 주셨다. 무엇보다 인상에 남는 것은 이날 만남을 마치면서 브로츠와프 대교구장 굴비노비치 추기경 선창으로 폴란드의 전통적인 성체성가를 부르실 때의 모습이다. 이른 아침부터 그때까지 빈틈 없이 짜여진 일정으로 무척 피곤하실 텐데도 꼿꼿이 서서 끝까지 우렁찬 목소리로 성가를 부르시던 그 경건한 모습, 오래 전의 성가여서 다른 참가자들은 절이 바뀌면서 얼마쯤 더듬거리기도 하는 눈치였으나 교황님께서는 전혀 막힘 없이 힘차게 부르시던 모습, 그건 정년 희수의 연치를 신앙으로 뛰어 넘는 활기찬 젊음의 모습이었다.
이어서 참석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시며 담소하시던 모습, 이들과 똑같은 식단의 음식을 맛있게 드시던 모습, 이번 성체대회 기념으로 브로츠와프 대교구가 지어서 당신께 바친 성 빈센트 성당을 비잔틴ㆍ우크라이나 전례의 브로츠와프ㆍ그단스크교구에 하사하시던 모습, 젊은 신학생의 청에 따라 싸인을 해 주시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며 교황님께서 건강하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어서 무척 기뻤다.
필자 내외를 얼른 알아보시고 반갑게 손을 잡아 주시며, 『아, 한국! 서울 성체대회를 잘 기억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던 자상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을 맴도는 듯하다.
세비야 세계성체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강의를 하게 된 것은 필자에겐 참으로 분에 넘는 영광이요 은총이었다. 28일 오후 필자에게 주어진 주제는「성체 신앙의 생활화를 위한 교육」이었다. 필자는 이 주제를 사회교리 교육과 연결 지어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고 청중들도 적지 않게 공감하는 것 같아 하느님께 충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서울 세계성체대회 때 시작돼 세비야 대회로 이어졌던 아가페 만찬은 이번 대회에도 베풀어졌다. 주로 동유럽 각국에서 온 가난한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느라 차례가 돌아오지 않아 아쉬움은 있었으나「아가페 만찬」의 뜻이 제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서 흐뭇했다. 이번 대회 일정 중 과거 어느 대회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이기도 하여 특별히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바로 30일 오전에 있었던 몇몇 나라의 성체대회 준비 상황 발표였다. 세계성체대회는 즉흥적으로 치를 수 없는 것이기에 성체대회 준비는 행사 조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영적 준비가 필요한 것이기에, 교황님께서도 모든 교구, 모든 본당, 모든 수도공동체, 모든 교회 단체가 이러한 영적 준비를 해야 한다고 역설하신다.
이날 발표 내용 중 몇 가지를 간추려 보는 것도 뜻이 있을 것 같다.
필리핀에서는 1997년 1월 22일부터 26일까지「성체와 자유」를 주제로 전국 성체대회를 개최하고 특히 가난한 이들과 냉담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이를 위해 1996년을 준비의 해로 정하고 특별 기도문을 작성해 전국 성체대회는 물론 세계성체대회의 성공을 위해 공동으로 기도를 바쳤다.
인도네시아에서는 1996년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부터 1997년 같은 대축일까지 1년 동안을「인도네시아 성체의 해」로 정하고, 사목교서를 발표하고 교구별 9일기도, 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들을 위해「성체와 자유」를 주제로 한 각종 자료들을 제작, 배포했다. 정의평화위원회는「성체와 자유」를 금년도 주요 활동 지표로 삼아 사람들의 구체적 상황에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이번 세계성체대회를 계기로 해 2천년에 전국 성체대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매년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에 앞서 성체의 날을 거행하기로 했으며, 각 교구, 본당 및 수도 단체 차원에서 성체대회를 거행했다.
멕시코에는 현재 5천 개 본당에서 3백80만 회원들이 야간 성체 조배를 하고 있고 본당, 지구, 지역 차원에서 6백 회 성체대회를 개최했다.
이러한 각국 교회의 영적 준비를 보아서도 참으로 2천년 대희년을 준비하는「성자의 해」인 금년에 세계성체대회를 거행한 것은 뜻 있는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다음 제47차 세계성체대회는 교황님께서 이미 교서「제삼천년기」(55항)에서 밝히신 대로 2천년 대희년에 로마에서 개최된다, 부디 다음 대회에는 세계 각 지역 교회에서 이제까지보다 나은 영적 준비를 통해 성체대회의 참 뜻을 충분히 살려 나가기를 기원해 본다.
이번 브로츠와프 세계성체대회에 참가하는 기회에 폴란드 교회를 둘러 보며 줄곧 뇌리를 떠나지 않던 생각은 바로 폴란드에서 교황이 배출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1981년 작고하신 폴란드의 수좌 주교 비신스키 추기경은 1978년 10월 16일 이제 막 교황으로 선출된 요한 바오로 2세께『당신은 교회를 제3천년기로 이끌어 가셔야 할 분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이번에 세계성체대회를 마치시고 고국의 여러 곳을 방문하시던 중 고르조프에서 교황님께서는 바로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는 이러한 임무를 무사히 마칠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도록 하느님께 기도해 줄 것을 신자들에게 간곡히 당부하셨다. 우리 모두 교황님께서「희망의 문턱을 넘어서」 제3천년기로 교회와 함께 온 인류를 이끌어 가실 수 있도록 간절한 기도를 하느님께 바치기를 기원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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