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에 대한 관심의 빈곤」. 빈민사목위원회가 설립 10주년을 기념하며 선언한「청빈운동 선언문」에 등장하는 용어다. 이 표현은 풍요와 향락으로 치닫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참으로 신선하고 힘 있는 용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쓰레기에 대한 요즘의 관심에 비교해 볼 때 빈민과 빈곤에 대한 관심의 빈곤이라는 표현은 참담한 비애마저 느끼게 한다.
사회적으로 쓰레기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쓰레기 소각장의 다이옥신 문제, 매립장의 침출수 문제 등등으로 쓰레기는 환경문제를 넘어서 인간다운 삶을 저해하는 요소로 대두되었다. 곳곳에 쓰레기를 줄이자는 표어와 구호가 넘친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악취 나고 부패한 쓰레기 더미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아우성이다. 이제 쓰레기문제를 외면하고는 쾌적한 환경이나 건강하고 인간다운 삶을 꿈 꿀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쓰레기 문제 못지 않게 더더욱 심각하고 시급한 문제가 있다.
이 시대의 빈곤문제가 그것이다. 빈곤은 소각하거나 매립할 수도 없거니와 빈곤에 노출된 인간을 쓰레기 인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시대의 산업경제가 빈곤을 양산하고 우리의 무절제한 욕구와 부의 갈구가 빈곤을 가중시켜 왔는데도 우리는 이 시대의 빈곤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하지만 쓰레기에 대한 모든 사람의 책임처럼 이 시대의 빈곤에 대해 면책특권을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빈곤은 풍요로움과 쾌적한 삶을 구가하는 이 시대를 언제나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쓰레기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수 없듯이 이 시대의 빈곤문제를 외면하고는 아무도 인간답게 살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마음의 쓰레기를 줄이는 것, 이것이 빈민사목위원회가 선언한 청빈운동의 골자이다. 청빈 실천은 이 시대 빈곤의 해약에 대해 잊지 않은 것이며, 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대안적 선택인 것이다. 따라서 이제 청빈은 한 개인의 빛나는 덕목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세상과 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시급한 선택이며 이 시대의 빈곤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일인 것이다. 물론 청빈 선언이 이 시대의 빈곤을 없애지는 못한다. 그러나 청빈 실천은 보다 인간다운 삶,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삶을 열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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