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업무 차 서울 중곡동에 있는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갔다. 그곳은 1980년대 초반 광주 가톨릭대학에서 함께 공부했던 ‘신학교 동창들’이 근무하는 곳이기도 해, 오랜만에 ‘소동창회’를 열었다. 화제는 자연히 삼십 년 전으로 돌아갔는데, 그 중 아주 황당한 이야기 하나를 들었다. 이야기를 재구성해 보면 이렇다.
어느 날 신학교에 도둑이 들었다. 외부와 단절된 곳에 그런 ‘손님’이 든 건 엄청난 사건이었다. 기도나 식사 시간이면 모두 한 곳에 모이니 그 틈을 타 절도하려 했던 모양이다. 그 ‘손님’은 밖으로 나가려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신학생과 마주쳤다. 당황한 그는 사람을 피해 성당 감실 뒤에 있는 휘장 속으로 몸을 숨겼다. 당황했던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지 그는 감실 뒤 휘장 속에서 대변을 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순간 내가 그 감실 앞에서 성체조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학교에 도둑이 들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으나, 그 ‘손님’이 휘장 뒤에서 일을 본 바로 그 순간 그 현장에서 내가 성체조배를 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그랬을 리가 없다고 하자, 당시 신학생들 사이에서 ‘똥 조배 사건’이 너무 유명했는데, 몰랐느냐고 동창은 되물었다. 정말 그랬을까? 억울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삼십 년이 지난 지금, 아니라는 증거나 알리바이를 댈 방법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내가 그토록 불명예스러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없었지만, 문득 그 이야기는 성체를 조배하면서 모르는 사이에 도둑의 대변 같은 무의미한 것까지도 조배해 온 내 인생의 단면을 상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내 인생은 오롯이 하느님, 예수님을 찾는 여정이었지만, 때론 극도로 무의미한 것마저 애지중지하기도 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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