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그녀를 만나리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우리 일행은 속리산 자락 어느 공소 이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낯선 여행객처럼 보이는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던 것이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자그마한 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이에게서 느낄 수 있는 넉넉함과 맑은 기운, 바로 농민운동가 임씨였다.
줄곧 독신으로 농민운동을 하다가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이곳 시골로 이사온지 불과 몇 개월 안 되었다는 그녀는 집 짓는 일에 마음을 쏟고 있었다. 그녀의 안내를 받아 공소에서 가까운 진대미 마을로 들어서자 이제 마악 제 꼴을 갖추어 가고 있는 흙집이 눈에 띄었다. 방 두 칸, 마루, 부엌, 샤워실 겸 화장실이 전부인 아주 소박하고 청빈한 흙집이었다. 왜 남들과 달리 고집스럽게 집을 짓느냐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녀는 옛집의 특성을 살리려는 뜻을 꺾지 않았다. 목수였던 아버지 덕분에 그녀는 어릴 적부터 집 짓는 광경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서까래 얹기 전에 상량식을 할 땐 온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울력을 했단다. 노인들이 이엉을 엮는동안 한편에선 싸리, 대나무, 옥수수대 등으로 기둥용 윗대를 엮고, 또 다를 편에서는 진흙을 이겨 놓는 작업을 했단다. 상량식이 곧 동네 잔치이던 옛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는 얼마 전 이웃들을 모두 불러 상량식을 했다고 한다. 떡, 술, 풍물이 저녁 늦게까지 한바탕 어우러졌다는 그날 얘기를 들으며 괜히 덩달아 흥이 나는 것 같았다.
자신의 흙집을 농촌 여성들을 위한 공간으로도 사용하고 싶다고 그녀는 쑥스러운 듯 고백했다. 농사를 지으며 아이를 키우고 집안 일도 돌보아야 하는 농촌 여성들에게 잠깐이나마 마실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행복해 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거울을 보듯 나 자신을 비춰 보았다. 나는 삶의 여정에서 과연 어떤 집을 짓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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