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언제나 이맘 때쯤이면 할머니는 내게 봉선화 꽃물을 즐겨 들여주셨다.
봉선화 꽃잎을 따서 백반과 함께 짓이겨 손톱에 동여매 주시고는『하룻밤 자고 일어나서 보자』하셨다.
이른 아침 떠오르는 해처럼 빠알갛게 물든 손톱엔 할머니의 보이지 않는 마음도 짙게 배어 있었다.
수려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가끔씩 큰 한숨을 길게 내쉬던 할머니.
공교롭게도 그날은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1주기 되는 날이었다.
1년 전 주의 거룩한 변모 축일, 갑작스럽게 닥친 할머니와의 이별을 슬퍼하면서도 좋은 날에 떠나게 해 주신 그분께 내심 얼마나 감사했는지. 그런게 살아 있는 우리들의 쓸 데 없는 계산(?)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1년 후 바로 그날, 비행기 추락이라는 끔찍스런 대참사 앞에서 감사할 수는 없었다. 다만 착잡하고 숙연해졌을 뿐이다.
어쩌면 그것은 빙산의 일각 같을는지 모른다.
서해 훼리호, 아현동 가스, 대구 지하철, 아시아나, 대한항공, 삼풍백화점, 성수대교로 이어진 비극의 파노라마에다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 집을 빼앗긴 채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 가족으로부터 버림 받은 사람들 …….
이 모두가 이 시대의 우울한 청사진이 아니던가.
할머니는 하늘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아침마다 돋보기를 쓰시고 오랜 시간 신문을 읽으시던 할머니. 세상 일에 관심이 많으셨던만큼 죽음에 대해서도 찬찬히 준비하셨기에 그렇듯 선종하실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슬픈 소식으로 가득 찬 요즈음, 할머니가 들여주시던 봉선화 꽃물이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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