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한 달에 꼭 한 번씩 마감병을 앓게 된다.
개인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는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라서 마감 때의 편집부는 그야말로 마감병동이 되고 만다.
마감병의 증세로는 우선 입맛이 없어지고, 속이 바짝바짝 타고, 건망증이 심해지고, 피가 마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 오죽하면 마감(시간)을 「데드라인」(dead line)「사선」즉, 죽음의 선이라고 표현했을까.
달이 가고 해가 가면 마감병을 심하게 앓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물론 그런대로 무사히 한 달을 지내는 때도 있지만, 대체로 그 증세가 약화되기는커녕 더욱 스릴 넘치게 심화되는 것이었다.
특히 건망증의 경우엔 더욱 강도 높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치곤 한다.
우산 두고 오기, 신발 짝짝이로 신기, 약속 잊어버리기, 공중전화를 건 다음 전화카드를 그대로 꽂아둔 채 돌아오기, 물건을 엉뚱한 데 갖다 놓기,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어야 할 원고를 쓰레기통에 버리기 등등. 우습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일,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하루에도 얼마나 여러 번 일어나는지.
하지만 이렇게 건망증이 심한 때일수록, 그래서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많이 할수록, 나는 내가 아니라는 모순 같은 진리를 깨닫게 되기도 한다.
일을 하되 나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는 것, 언제나 나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손길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깊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사는 것 같아도 나 스스로의 힘으로 사는 게 아니라는 진리를 얼마나 자주 잊고 지내는지…….
나약함에서 드러나는 크신 은총이여!
지금까지 수고해 주신 이혜정 수녀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호부터는 서울대 불문과 강사 이병애씨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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